이해할 수 없는 것들

새학교 적응기, 두 번째 이야기

by 은향

2월에 교사들의 발령이 나면 학교마다 새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3월부터 새학교 출근이지만, 2월말에 전입교사들을 발령난 학교에 오게 하여 교육과정 연수를 3~5일 정도 진행한다. 전공서적만큼 두꺼운 연수집에는 부서별 계획서와 각종 안내사항들이 꼼꼼하게 담겨있다. 교감 선생님의 복무와 청렴 등에 관한 의무 연수, 업무별 결재라인 등에 관한 안내를 시작으로 각 부서장들은 업무 소개와 협조사항들을 이것저것 당부한다. 부서장들이 연수를 마치며 "한 해 동안 선생님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치레의 말이 현타로 다가오는 것은 3월 초이다.


3월, 설렘보다 긴장감이 더 큰 새학기가 여지없이 시작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각 부서에서 보낸 읽지 않은 메시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컴퓨터를 확인하는 게 부담을 넘어 겁이 날 정도이다. 각 부서에서 붉은 색으로 제출 기한을 강조하며 보낸 메시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달력에 표시하며, 첨부 문서를 출력해서 내용을 확인하다보면 공강 시간이 훌쩍 다 지나가기 일쑤이다.



그 중에서도 3월 초 모든 교사가 제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는 평가계획서와 교과별 교육과정이다. 수업 내용과 수행평가, 지필평가 계획을 구체화한 평가계획서는 한 학기 수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구체화한 설계도와 같다. 교과별 교육과정은 주 단위로 수업 방법과 평가에 대해 진도계획을 작성하는 일명 '교과 진도표'이다. 이러한 문서에는 공통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정해져 있지만, 학교마다 양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니, 이 학교는 무슨 진도표 양식이 이 모양이지? 샘, 진도표 작성했어요?"

옆 자리 음악 선생님이 교과 진도표를 작성하다가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저 아직 그 파일 열어보지도 못했어요. 이번에 들어가는 교과가 많아서 혼자서 평가계획서를 2개나 작성하고 있거든요. 오늘까지 평가계획서 먼저 다 마무리하고, 진도표는 내일이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살다살다 이런 진도표는 처음 보네..."

음악 선생님이 긴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다음 날, 두 과목의 평가계획서를 마감 날짜에 맞춰서 겨우 제출하고, 부랴부랴 진도표를 작성하기 위해 파일을 열었다. 순간, '헉!!! 뭐 이런 양식이 다 있어?' 음악 선생님의 한숨과 투덜거림이 확 와 닿았다. 평가 계획서에 넣은 교과목표가 진도표에 왜 또 들어가 있고, 영역별 내용 체계표는 쓸데없이 왜 넣어서 문서 양만 늘리는 건지... 거기에다 가장 중요한 단원별 운영계획표에는 주단위로 수업 내용에 관한 핵심질문과 교과역량까지 쓰게 되어 있어서 표가 3~4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으로 진도표에 들어가는 내용인 누계 시수 적는 칸은 있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학교의 교과 진도표는 주 단위로 수업내용과 방법, 평가사항, 안전교육 관련 내용, 누계 시수를 적는 한 페이지로 된 간단한 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부장을 몇 년씩 해 봤고, 도 교육청 평가혁신단으로 활동하면서 평가관련 컨설턴트까지 해 본 나였지만, 이런 양식은 듣도 보도 못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양식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마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 정말 교과별 교육과정 양식 보고 깜놀했어요!"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부서장은 따로 있지만 경력이 꽤 있으신 선배 교사께 존칭의 의미로 일반적으로 '부장님'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제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음악 선생님이 이제서야 알았느냐는 듯, 반기는 얼굴 표정으로 말한다.

"네!!! 아니, 진도표 양식이 왜 이렇죠? 도대체 누가 이런 식으로 양식을 만들었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평가업무 좀 해 봤고, 교직 34년 차에 이런 양식은 첨 봐요. 쓸데 없는 내용은 왜 이리 많이 넣어 놓고, 누계 시수 작성란은 있지도 않아요."


음악 선생님은 작년까지 근무했던 학교의 양식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진도표가 이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들어갈 내용만 간단하게 넣으면 되지. 쓸데없이 이게 다 뭐에요...?"

"그니깐요. 저도 전에 학교 양식은 이것과 비슷했어요. 간단한 1페이지로 된 진도표요. 저도 전에 학교에서 이쪽 업무 많이 해 봤는데, 핵심 질문이나 교육과정 내용체계표 이런 건 단 한 번도 안 넣었어요. 이런 건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왜 쓸데없는 문서 작업에 에너지를 쏟게 할까요?"

"당연히 바꿔야 하는데... 오자마자 이런 말 하기도 그렇구..."

"그러게요. 이제 새로 온 사람들이니 일단은 그냥 조용히 있다가 상황 봐가면서 하나하나 의견을 내 봐요..."



기존에 있었던 사람들은 못 느끼는 이상한 점들을 새로 전입 온 사람들은 바로 느끼는 때가 참 많다. 이런 경우에 기존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에 크게 불편함을 모르고, 새로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을 대개는 불평불만으로 치부해 버린다.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문제의식을 존중하면 발전하고 성장하게 되는데, 그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거나 용기를 내어 말을 해도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새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그 학교 시스템에 따르는 편이다.


예전에 어떤 관리자들은 새로 온 전입교사들에게 "예전 학교는 어땠는데... 이런 말은 하지 마세요. 이 학교에 오셨으면 이 학교의 시스템에 따라 주세요."라고 공식석상에서 말하며, 문제 제기 발언 자체를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우리 교무실에는 기존에 있던 부장님과 올해 전입 온 나와 음악 선생님 세 명이 근무하는데, 다행히 우리 부장님은 나와 음악 선생님의 문제제기를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와 음악 선생님은 수시로 개선사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부장님한테 학교 분위기를 물어보며 이런 의견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건강한 조직은 문제 제기를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있고, 이에 대해 편견없이 수용하고 함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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