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필 평가의 씁쓸한 맛 (1)

책임 전가하는 아이와 학부모

by 은향

우리 나라는 교사의 평가권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학업성적관리지침에 의해 평가에 제약이 많고, 얼토당토아니한 민원에 의해 수업도, 평가도 수시로 휘둘리곤 한다.


6월 마지막 주, 우리 학교는 일주일간 2차 지필평가를 시행했다. 지필 평가에 쏟는 교사들의 에너지와 정신적인 피로도가 어마어마하다. 시험 문항 출제와 검토, 교과 협의야 마땅한 것인지라 제외하고. 평가 관련해서 쓸데없는 일로 신경쓰고, 힘빠지는 일들이 참 많다.


하루는 2학년 6반의 어떤 학부모한테 민원 전화가 왔다고 들었다. 6반의 한 학생이 시험 중에 질문을 해서 해당 과목 선생님이 답변을 하러 그 학생에게 갔다. 학생의 질문에 선생님은 인사치레로 "(시험 문제) 어렵지?"라고 별 뜻없이 얘기를 했는데, 학생은 자기가 답을 틀리게 체크해서 선생님이 어렵지,라고 말했다고 생각해서 답을 고치는 바람에 틀렸다고 한다.


그 학생의 엄마는 선생님의 말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한 문제를 틀렸다고 항의 전화를 한 것이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어렵지.'라는 말을 듣고 답이 틀렸다고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설령 그 말 때문에 답을 고쳤다쳐도, 그건 학생이 문제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진 것이고 정답에 확신이 없어 고친 게 아닌가. 별의별 게 다 선생님 탓이다. 잘 되면 본인 탓, 안 되면 교사 탓. 요즘은 자신의 잘못을 학교에, 특히 선생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너무나 많다.


지필평가가 끝나고 교무부장님한테 이 일이 잘 마무리 되었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내가 40분도 넘게 그 학부모한테 욕받이 해 주고 겨우겨우 넘어갔어요... 교무부장하면서 민원 전화 응대하느라 감정 노동자로 살아요."



하루는 아침 이른 시간에 우리 부장님한테 1학년 4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4반 아이들이 조례 시간에 사회 시험 범위 안내가 잘못되었다며, 담임에게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다. 당장 오늘 3교시에 시험인 과목인데, 당일 아침에 시험 범위를 가지고 이의제기를 하다니... 4반 담임은 담당 교사인 우리 부장한테 직접 교실로 와서 이 사태를 해결해 보라고 연락한 것이었다.


우리 부장님은 3,4단원 전부가 시험 범위라고 4반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안내를 했는데, 그 중에는 1차 지필 평가 때 시험 범위인 3-1단원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 중에 설명할 때 제대로 안 듣고는 자기멋대로 3-1단원은 1차 때 봤으니까 2차 지필 범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공부를 안 일부 아이들이 사회 선생님이 안내를 제대로 안 했다고 트집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학급 회장을 비롯하여 말이 많은 무리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고, 분명히 제대로 전달받고 공부한 아이들이 있을텐데도 문제를 제기한 학급 회장의 기세에 눌려서 다른 아이들은 동조하거나 대다수는 아무말을 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부장님이 말했다. 수업하는 6개반에 똑같이 전달했는데 왜 유독 1-4반만 그렇게 들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답답해 했다.


쉬는 시간에 부장님이 몇몇 학생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확인을 하니, 자신은 3,4단원으로 제대로 듣고 공부했다고 진실을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다행히 오전에 시험이 끝나고 4반 담임으로부터 일이 잘 마무리 된 것 같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3-1 단원에서 출제한 문제가 쉬워서 대다수의 아이들이 해당 부분 문제를 맞은 것 같다고...


그 부분의 문제가 어려워서 문제제기를 한 아이가 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계속 우기면, 어쩌면 재시험까지 봐야 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다수라는 점을 무기로 한 명인 교사를 궁지에 몰아넣을 때가 많다. 그중 흔한 말이 "못 들었는데요? 선생님이 말 안 하셨는데요?"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이다.

분명히 선생님이 말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아이들 세계에서 친구 관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므로 힘든 일을 겪고 싶지 않은 대다수의 아이들은 입김 센 아이들의 억지 소리를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다수의 거짓된 말에 상대적으로 혼자인 교사는 꼼짝없이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려하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그렇게 상황을 모면하고 얄팍하고 비겁한 행동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한들 떳떳하지 못할텐데...


"수업 시간에 전달하는 중요한 사항은 수업 시간에 말로 했어도 클래스룸에 다시 한 번 공지해야 되더라구요. 그래야 애들이 나중에라도 딴소리 못하더라구요. 요즘은 빼박 증거를 남겨놔야만 해요."

"이런거 저런거 일일이 다 생각하고 체크하고, 말로 전달한 것을 다시 클래스룸에도 올려야하니 교사는 맨날 바쁠 수밖에 없지. 지나치게 꼼꼼해야 하고, 챙길 게 너무너무 많아서 정신줄 붙잡고 살기가 참 힘들어..."

내 말에 음악 선생님도 거들었다.


우리 부장님은 그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4반 아이들의 얼토당토 않은 문제제기로 온 신경을 다 써야 했고, 피곤하게 뒷감당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와 무력감은 혼자서 조용히 감내해야만 했고,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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