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필 평가를 치르고 벌어진 씁쓸한 일을 쓰다보니 지난 학교에서의 비슷한 일이 몇 가지 떠올랐다.
이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평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학력평가부장을 맡았었다. 지필 평가 때마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자주 열려 수시로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커닝을 한 학생들의 성적처리 건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말도 안 되는 민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번은 역사 시험에서 선생님이 시험범위를 교과서의 어느 부분이라고 알려주었는데, 학습지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학습지는 교과서 내용과 관련하여 선생님이 만들어서 수업 시간에 배부하고 설명한 내용임에도, 일부 학생들의 주장은 시험 범위 안내를 할 때 학습지도 포함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과서의 수업 내용을 자료로 만들어 학습지를 배부했고, 수업 시간에 직접 가르친 학습지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한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학부모의 민원에 벌벌 떠는 학교장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허울좋은 소리로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재시험을 치르도록 종용했다.
또 한 번은 영어 서술형 시험 문제 채점과 관련하여 민원이 들어왔다. 2학년 영어 시험에서 철자 틀린 것에 대한 감점 요소가 3학년 영어 시험보다 엄격하다며, 2학년도 3학년과 같은 기준으로 채점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엄연히 2학년과 3학년의 가르치는 교사가 다르고, 선생님이 시험에 대해 안내할 때 평가 기준이나 감점 사항에 대해 전달했음에도 학생과 학부모의 논리는 같은 영어 교과이므로 2,3학년의 채점 기준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원이 커질까봐 불안해하며 학부모의 눈치만 보는 학교장은 이번에도 아이들 입장을 운운하며 점수를 주라고 해서 영어과 교사들은 전교생을 재채점해야 했고, 우리 부서에서는 성적 처리를 다시 해야 했다.
이러한 결정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요구와 학부모의 민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인 걸까. 당시에 우리 부서의 S선생님이 복도에서 몇몇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와서 그대로 전했는데, 우리는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 번에 역사 시험도 우리가 재시험 보게 만들었잖아. 야, 이번에 **과목 시험 점수 별론데, 재시험 보게 만들어 볼까?"
"하하하!!! 그럴까?"
분명 잘못된 것임에도 큰 목소리로 우기면 다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아닌 건 아니라고, 고집피운다고 세상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지 않은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우선적으로 반성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쳐야 사회에 나가서도 책임지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에게 막무가내로 우기고 떼쓰는 몰상식한 인간들도 많고, 뉴스를 보면 어떤 문제나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다른 기관이나 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도 다반사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책임지는 태도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관리자들은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오면 대부분 들어주려고 한다. 그러니 학생이나 학부모는 작은 일에도 수시로 민원을 제기하게 되고, 그 결과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부분 결정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또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학교나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핑계를 대며 계속 민원을 제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이런 일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은 아이들은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당연히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책임전가하는 뻔뻔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