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 계의 아웃사이더
사실 바이레도에 대해 브랜드 리뷰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2006년 스웨덴에서 론칭하여 이제 막 15년이 된 브랜드라서 인상적인 브랜드 스토리가 많이 알려진 것도 없었고, 제 관점에서는 향수를 넘어 색조 제품은 물론, 의류 및 선글라스까지 브랜드를 짧은 시간에 확장한다는 사실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브랜드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브랜드 창립자인 벤 고헴의 인터뷰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품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하나의 아이덴티티"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제게 많은 영감을 주며 이렇게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의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1. 바이레도의 아이덴티티 : 아웃사이더
"제품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하나의 아이덴티티!"
무슨 말인지 어렵죠? 이해하려면 브랜드 창립자인 벤 고헴의 인생 이야기를 잠깐 이야기해야 합니다.
벤고헴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혼혈이었고, 어머니는 인도인이었습니다. 벤고헴이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가족 곁은 떠나 버립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벤 고헴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벤 고헴은 농구를 시작하고 실제로 촉망받는 유망주로 이름을 얻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 프로팀에서 뛰기 위해 스웨덴을 다시 찾았지만 영주권 문제가 생기며 스웨덴에서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야 했던 벤고헴은 스톡홀름 미술학교를 들어가게 되고, 그곳의 경험과 피에르 울프라는 유명한 조향사를 귀인으로 만나 향수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향초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바이레도입니다.
이처럼 벤 고헴의 삶은 여러 정체성이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혼혈, 이민자, 운동선수, 예술가.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들의 조합이 벤 고헴라는 사람 안에서는 모두 존재해 왔고, 그것들이 문화적 충돌 빚으며 벤 고헴만를 독특한 정체성 가진 인물로 만들어냈습니다.
즉, 벤 고헴은 바이레도에 자신안의 다양한 정체성을 녹이자 했던 것입니다. 향수, 향초, 메이크업, 티셔츠, 신발, 청바지 등 다양한 제품들이 바이레도라는 브랜드 안에서 각자가 가진 정체성의 충돌을 빚으며 하나로 귀결시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품들 사이에 연관성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벤 고헴은 광고는 스테로이드 같다며 유독 미디어 광고는 기피하고 브랜드 내러티브를 알리는데 집중합니다. 제품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들려주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향이라는 뜻의 Redorence 에 by를 붙여 브랜드명을 지은 것도 있습니다. 바이레도 최소의 향수 5종(집시 워터, 로즈 누아르, 펄프, 샹 뷔르, 그린)에는 벤 고헴의 추억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죠.
그 중 바이레도 그린향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서 맡았던 향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좋지 못한 추억 때문인지 다른 향수들이 그린을 상쾌함과 청량함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과 다르게 바이레도의 그린은 뒷 향이 씁쓸한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바이레도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오픈하고 제품의 스토리로 연결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죠.
저는 바이레도의 이런 전략이 아주 주요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를 들어서며 세계화는 가속화되었고, 사람들의 이동이 쉬워졌으며, 이로 인해 예전과는 다르게 다문화 가정도 급격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이민자, 혼혈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이들은 각 사회의 비주류에 속하게 되죠. 벤 고헴은 자신을 럭셔리계의 아웃사이더라고 정의하면서 사회적 아웃사이더가 가진 감정을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향을 만들었고, 이 메시지가 비주류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BTS 문화로 대표되는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서며 기존의 주류 문화와 문화적 융합이 되는 현재의 트렌드와 만나 바이레도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 100년이 가는 디자인 : 완벽주의
그리고 바이레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디자인입니다. Simlpe Is The Best라고 했나요? 굉장히 심플하죠.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디자인을 원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무엇인가를 더하기보다는 빼는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품을 구매 보면 겉으로 보이게는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패키지로 사용한 종이질이 매우 고급스럽고, 뚜껑에 자석을 달아 사용할 때마다 특유의 손맛이 있습니다. 마치 듀퐁라이터를 여닫을 때 나는 소리와 같이 어떤 감성을 전달하는 듯 합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바이레도를 처음 접했을 때 바이레도의 CD는 분명히 남자라고 느꼈습니다. 집착적인 직선의 디자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성 BM 분은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형 캡과 둥근 병의 모습에서 그렇게 느꼈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게 적용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남녀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디자인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굉장히 중성적으로 잘 디자인되었다고 판단됩니다.
3. 직설적이고 솔직한 선명한 향
마지막으로 바이레도는 향이 굉장히 선명합니다. 여러 가지의 향이 섞여 새로운 향을 내는 것보다 원료 특유의 향이 하나하나 느껴집니다. 딥티크의 표현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딥티크가 사용하는 원료들이 전통적으로 여성 쪽이 더 강하다면 바이레도는 그보다 중성적입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기존에는 선호하지 않은 방식이었는데, 르 라보와 함께 니치 향수 시장의 성장을 태동시킨 초창기 향수들이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바이레도의 블랑쉐향을 엄청 좋아하고, 바이레도의 제품에 대해서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벤고헴의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자체에 대해서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죠. 그런데, 벤 고헴의 인터뷰를 보며 뭔가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지켜보고 응원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며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제가 그의 브랜드 철학에 영감을 받은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