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시작
성공은 오로지 나의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같은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다. 거만했고 무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아프면서 어리석은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다시 회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먼저 시작했던 건 나의 아픔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사람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 우울도 한 단어로 불리지만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의 우울은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나의 우울은 불안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불안은 나의 행동과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많은 걸 경험하지는 못한 나이이지만 그동안 이뤄냈던 성과들은 도태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동력을 얻었고 불안은 고스란히 흔적을 남겨 우울의 훌륭한 먹이가 되어주었다.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보았다. 기억이 허락하는 선에서 과거로 돌아와 나를 차근차근 지켜봤다.
어느 날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부모의 싸움이 아이에게는 전쟁의 공포라는 말처럼 공포스러워서 책상 밑에서 엎드리고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하루는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 나이에 시험에서 1등을 해 기뻐하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서는 모든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가면 꼴등을 할 형편없는 학생이라고 일장연설을 한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나서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아무 말도 못 한채 자리에 앉았다. 잘못된 말을 걸러낼 능력이 없었던 나는 늘 부족하다는 불안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런 내가 불쌍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문제는 불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보니 내 과거는 모두 불안의 이유가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불안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고 선생님들은 어른이 아닌 자신의 이익으로만 학생을 대한 쓰레기가 되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다시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내 기억에서 부모님은 한 두번밖에 싸우시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감정이 격해지셔서 목소리가 높아지신 것 뿐이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아이 앞에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누가 늘 이상적인 모습만을 자식에게 보일 수 있을까. 너무 가혹한 기준이다. 사실 상처를 받는 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다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상처입히기도 하는데 사랑하는 사이에서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수 없다. 부모님의 실수는 고의가 아니었고 부모님의 사랑은 늘 노력이라는 걸 부모님은 표현하고 보여주었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진심어린 사랑을 표현 받은 축복 받은 자식이다. 부모님이 나를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해가며 노력해오셨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기에 포기해야 함을 받고 배운 행운아다. 부모님은 불안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비록 나를 상처주는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부모님께 연락해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성적이 떨어지면 내가 힘든 일이 없는지 찾아와 보살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불안의 시작이라고 여길만큼 강렬한 경험을 준 사람들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 때 깨달았다.
본성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나는 불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물이 많이 차 있는 그릇을 가지고 태어나 흘러 넘치지 않도록 평생 관리하는 일이 내 인생의 숙제임을 알게 되었다. 한 떄는 무척이나 억울했지만 사람들은 각자만의 숙제가 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사람들을 같은 잣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는 좀 더 겸손하고 타인을 좀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행동과 결과는 행하는 사람마다 다른 노력의 양과 질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저 각자의 숙제를 성실하게 해나가며 인생의 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행 여부는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그 때부터였다. 길을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숙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된 때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