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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25. 2021

[에필로그] 해가 지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여름방학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며칠 전 오랜만에 병원 정기검진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느지막한 오후, 도로에는 퇴근길을 서두르는 인파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높은 빌딩 숲 사이로 갑자기 자분홍빛 고운 광선이 퍼져 나왔다. 건너편 거울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 석양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아, 노을이다!


나도 모르게 해가 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건너, 가로수를 스쳐, 도로를  메운 만원 버스 행렬을 지나... 하지만 아무리 달려 봐도 낙하하는 태양을 눈으로 붙잡을  없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너무나 높고, 지면  어디에도  이상 여백의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낮은 곳에서는 노을을 온전히 응시할  없구나...


서글펐다. 손에 닿지 않는 무지개처럼, 끝내 놓쳐버린 노을처럼, 서울에서의 삶이란 저 멀리 빛나는 무언가를 향해 무작정 뛰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되돌아와 버린 듯한 비애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소심한 희망이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아니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도착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넌 늘 놓치며 살았잖아. 그런데 이젠 그게 귀한 선물임을 알고, 이렇게 종종 제 때 받아서 열어볼 수 있게 되었는 걸. 잊지 않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다. 여전히 삶은 달콤한 날보다 씁쓸한 날이 많을 테고,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면 다시 두껍고 차가운 갑옷으로 스스로를 꽁꽁 싸매려 할 테고, 영혼이 상하고 몸이 아프면 언젠가 또 타의던 자의던 잠시 멈춰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래도 믿고 싶다. 아니 믿어 보련다. 우회해서 좀 멀리 돌아가도 괜찮다고, 자주 쉬느라 남들보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여전히 내 인생엔 숨겨진 보물찾기 쪽지가 더 남아 있을 거라고, 아직 찾을 시간은 넉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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