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며칠 전 오랜만에 병원 정기검진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느지막한 오후, 도로에는 퇴근길을 서두르는 인파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높은 빌딩 숲 사이로 갑자기 자분홍빛 고운 광선이 퍼져 나왔다. 건너편 거울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 석양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아, 노을이다!
나도 모르게 해가 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건너, 가로수를 스쳐, 도로를 꽉 메운 만원 버스 행렬을 지나... 하지만 아무리 달려 봐도 낙하하는 태양을 눈으로 붙잡을 수 없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너무나 높고, 지면 위 어디에도 더 이상 여백의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낮은 곳에서는 노을을 온전히 응시할 수 없구나...
서글펐다. 손에 닿지 않는 무지개처럼, 끝내 놓쳐버린 노을처럼, 서울에서의 삶이란 저 멀리 빛나는 무언가를 향해 무작정 뛰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되돌아와 버린 듯한 비애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소심한 희망이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아니야,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도착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넌 늘 놓치며 살았잖아. 그런데 이젠 그게 귀한 선물임을 알고, 이렇게 종종 제 때 받아서 열어볼 수 있게 되었는 걸. 잊지 않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다. 여전히 삶은 달콤한 날보다 씁쓸한 날이 많을 테고,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면 다시 두껍고 차가운 갑옷으로 스스로를 꽁꽁 싸매려 할 테고, 영혼이 상하고 몸이 아프면 언젠가 또 타의던 자의던 잠시 멈춰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래도 믿고 싶다. 아니 믿어 보련다. 우회해서 좀 멀리 돌아가도 괜찮다고, 자주 쉬느라 남들보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여전히 내 인생엔 숨겨진 보물찾기 쪽지가 더 남아 있을 거라고, 아직 찾을 시간은 넉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