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서평
얼굴이 포동포동하고 배가 두둑이 나온 사람이 부러움을 사던 시기가 있었다. 입에 풀칠하기가 빠듯하던, 너도 나도 모두 가난하던 그 시절에는 삼시 세끼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명징한 부의 지표였다. 지금도 여전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성공한 이의 상징으로 칭송한다. 반면 이제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매끈하고 날렵한 몸매가 부의 표식이 되었다. 값싸고 열량이 높은 인스턴트식품을 자주 먹는 저소득층이 점차 뚱뚱해진 것과 달리, 부유한 이들은 고영양 저칼로리 위주의 식단과 고급 퍼스널 트레이닝(P.T.)을 통해 꾸준히 날씬한 몸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경험적으로 안다. 한 사회의 부와 가난은 각자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진다’는 것을.
한 때 방송모금 프로그램이 대중적 관심을 끌 던 시기가 있었다. 주요 방송사마다 심야 시간대에 곤궁한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온정의 손길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하나씩 편성하곤 했다. 불행은 꼭 한꺼번에 쏟아지기라도 하는 걸까, 방송이 담은 그들의 삶은 늘 가난했고 매번 아팠다. 아파서 가난해진 건지 가난해서 아픈 건지,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끝없는 도돌이표 속을 맴도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이런 방송들이 출연자에 대한 인권 의식 향상,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빈곤 포르노’에 대한 경계, 콘텐츠 트렌드 변화로 대부분 폐지·축소되었으나, 우리 인식 속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가난하면 더 많이 더 자주 아프다는 것, 즉 가난과 질병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인과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건강 불평등’은 이제 사회복지 분야에서 꽤나 익숙한 주제이다. 아니, 이미 대중들에게도 경험적으로든 직관적으로든 매우 친숙한 명제가 되었다. 비단 빈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노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산재 피해자, 재난 생존자, 재소자, 이주민 등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고립된 이들 모두의 문제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고 해서, 모두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막연하게 알면서 이미 다 안다고 여겼던 것들,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더 이상 원인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 언론에서 너무 정략적으로 소비되어 지겨운 주제가 되어 버린 것들, 사회적 편견에 갇혀 마치 진짜 내 생각인 양 여기게 된 것들을 찬찬히 제대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사회적 고난과 대형사고 같은 충격적 경험이 어떻게 몸과 정신에 고스란히 반영되는지, 왜 폭염이나 혹한 같은 자연적 재난도 불평등하다고 말하는지, 차별이나 배제라는 ‘사회적 따돌림’이 왜 물리적 폭력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지, 혐오라는 낙인이 어떻게 사람을 옭아매고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게 하는지, 공적 안전망이 부실한 나라에서는 왜 해고가 살인처럼 여겨지는지, 위험한 일자리는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향해 전가되는지 구조적 맥락과 원인을 살펴보게 한다. 명확한 데이터와 간결한 분석을 통해 어려운 주제도 쉽게 설명하는 능력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관점을 겸비한 저자는 훌륭한 해설가이자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래서 우리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현상’을 확인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거미줄을 짜낸 근본적 원인 즉 ‘거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렴풋하던 인식을 분명하게 밝히고, 두터운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왜 아픈지 이해하게 되고, 얼마나 아팠을지 공감하게 된다.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믿음이 건강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미국 로세토 공동체의 사례와 사회적 관계망이 많을수록 면역력이 높았다는 실험 결과는 지금과 다른 모양의 거미줄을 새롭게 짜내고픈 상상력을 자극한다. 더욱 촘촘하고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하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저자의 말대로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건강해야 일도 하고 투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전만으로 모두의 건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공평하지 않기에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더 자주 아프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는 아픈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나약해서라고, 다들 힘들어도 견딘다고, 이젠 듣기 지겹다고 말하는 대신, 왜 아픈 건지 함께 질문해야 한다.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하여 연민하는 것을 넘어, 사회구조적 고통은 아닌지 살펴보고 근본 원인을 찾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