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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Nov 02. 2023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싶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제목의 책을 보고 그렇다면 나는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때론 다정했고, 때론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다정은 내게 생존의 필수도, 생존전략도 아니었다.     


세상엔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한때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으며 자랐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고,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다지 강한 것 같지 않은 것들도 살아남는다. 자연은 사자와 호랑이 같은 강한 동물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니까. 작고 연약해 보이는 다람쥐도, 참새도, 벌도, 민들레꽃도 저마다 살아남아 생존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들의 생존을 규정하기 위해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변형이 생긴 건 아닐까.      

정글 사회에서 살아남았으니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도 제법 일리가 있지만, 그가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 아니면 책의 주장처럼 다정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성질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고민의 핵심은 나는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다.     


모두 저마다 생존 방법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는 혼자 살기를, 사자는 무리를 이뤄 살기를, 악어새는 악어의 곁에서 살기를 선택하고, 누구는 추위에, 누구는 더위에, 누구는 눈[雪]에, 누구는 비에 적응하며 살기를 선택한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유용한 생존방식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 내게도 적절한 생존방법이 존재하는 걸까. 그런게 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고 괜찮아질까.     


*****     


돈을 벌기 위해 당시 페이가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하루에 250번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왔을 때,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나의 생존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을 단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할 수는 없었다. 다시 백수가 되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는 사람.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사람. 

    

이직했을 땐 직급이 바뀔 때마다 일이 다양해져서 즐거웠지만, 1년마다 일이 반복되자 이내 무료함을 느꼈다. 그리고 또 확신했다. 이건 나의 생존 방식이 아님을. 나는 함께 합을 맞추며 일을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편했고, 매일 다른 일을 해야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 나는 무언가를 완성해낼 때의 성취감과 그것을 나눌 때 강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잘 적응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며 오래 방황한 끝에 찾은 생존방식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었고, 나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으며, 나를 꿈꾸게 만들고, 계획하게 만들고 바라는 것을 만드는 원동력의 근원이었다.


글쓰기와 함께 하면서 무료하고 지루했던 삶에 다양한 삶의 재미가 생겨났고, 삶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할 수 있는지고 알게 됐다. 이 정도라면 글쓰기는 나의 생존전략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흔에 가까워질 무렵 나의 생존전략을 찾았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할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이제부터 나는 글로 살아남을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존방법이 되기 충분하니까. 나는 매일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글을 쓸 것이다.


물론 아무리 내가 원하고 나에게 적합한 생존전략이라도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홀로 사는 호랑이가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죽는 것처럼, 여럿이 모여 사는 사자가 먹을 것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더 많이 사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그만한 대가를 치루라 할 것이고,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시간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보며 완벽히 꿈꿨을 때가 있었다. 시카고 타자기 속 주인공의 삶을 꿈꿨고, 그 대본을 쓴 작가를 꿈꿨을 때.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쓰는 게 꿈이었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길 꿈꿨다.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그의 글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그의 책이 출간되길 기다리고,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길 기다리고, 내 책을 출간해주겠다는 출판사를 기다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인을 만들고 있다.


글은 아직 내게 넉넉한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고, 나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찾고, 다른 무언가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글은 내게 생존방법이지만, 그것이 살아가는데 실용적인 방법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은 냉혹해서 현실 같고, 드라마는 완벽하게 이상적이어서 꿈 같다.     


그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작가의 팬이었던 또 다른 주인공이 작가로 성장해 자기 앞에 앉아있는 그에게 옛일을 고백한다.     


“그때 나는 알았다니까. 이 사람 굉장한 작가가 되겠구나. 그때부터 쭉 응원했어요. 지금 잡은 지푸라기가 동아줄이 돼라. 글이 밥이 되고, 밥은 또 글이 돼라. 그리고 빌어줬어요. 고단한 인생이 이 사람의 발목을 붙잡지 않기를. 그건 그저 신이 위대한 작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준비한 잠깐의 시련이기를. 지금 겪는 고통의 시간이 시련기가 아닌 수련기이기를.”     

그리고 물었다. 글이 밥이 되고, 밥은 또 글이 되었냐고.


그는 팬의 기도처럼 글이 밥이 됐고, 돈이 됐고, 쭉 글을 쓰며 글로 생존하고 있다.     

나의 생존은 아직 냉험한 정글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삶이 고통이어도 행복한 고통이고, 삶이 고난이어도 견딜 수 있는 고난이고, 슬럼프가 찾아와도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슬럼프일 테니까.     


만약 누군가 내게 당신의 생존전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것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붙들고 있는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 글이 다정일지 냉정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 호흡이자 맥박임은 분명하다. 살아남는 자가 쓰는 자는 아니어도, 쓰는 자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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