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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고리즘 Sep 10. 2021

풀 깎을래? vs 밥 지을래?

군생활 최대의 고민

"너 취사병 해야겠다."

"잘... 잘못 들었습니다?"






2020년 3월, 눈물을 머금고 육군 훈련소 입영 심사대를 통과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아빠와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훈련소 생활은 역시 쉽지 않았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 했지만 훈련소는 열악했다. 6주간의 훈련을 마쳤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료식이 진행되지 않아 이등병 약장을 동기들끼리 서로 달아줬다.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을 떠나지만 정든 훈련소 동기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마음이 섞여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3시간, 버스를 타고 2시간을 지나 강원도 모 부대에 도착했다. 자대 배치의 시간이 온 것이다. 내가 입대할 때 지원한 보직은 편성 보급병이다. 나름대로 물건 정리, 분류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지원했다. 쉽게 말하면 '창고병, 보급병'이라고 불리는 보직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창고병이 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대에 도착한 후 어리바리 짐을 풀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중대장님께서 2020년 2월, 3월 군번 (당시 전입신병들)을 불러서 신병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가 끝난 후, 아직 특수 보직이 정해지지 않은 신병들을 불렀다. 그곳엔 나를 포함한 다른 창고병 동기들 3명이 중대장님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지금 우리 부대 취사병 편제가 비었다. 


옆 대대에서 취사병이 부족하다고 자꾸 떼쓰는데


빨리 충원해줘야 할 것 같다.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 



당시 나와 내 동기들은 이 말에 어쩔 줄 몰라했다. 신병이기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다들 취사병은 당연히 하기 싫어했다. 애초에 기대했던 군생활이 아닐뿐더러, 취사병의 고충은 다른 선임들로부터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휴가를 많이 받는다는 메리트 외에는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역시.. 예상대로 그 누구도 자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대장님께서 갑자기 나만 남고 다 가보라고 했다. '당첨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체념한 상태였다. 중대장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직수입인 네가 어쩔 수 없이 취사병 해야겠다." 그렇다. 다른 동기들은 후반기 교육. 즉 훈련소 수료 후에 2~3주 간 주특기 교육을 받고 왔었지만, 나는 훈련소 수료 후 바로 자대로 배치받은 일명 '직수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보직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었다. 아직 교육을 받은 이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곳이든지 불려 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마침 우리 부대에 취사병 자리가 빈 타이밍이었으니,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다. 중대장님은 자원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면 나를 선택하려 했던 모양이다. '삽으로 요리한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하루에 몇 인분을 만들어야 하나?' 오만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취사병 싫으면 다른 거 해도 된다. 다른 자리가 또 남았거든. 풀 깎아볼래?" 



그렇다. 예초병 자리가 남았던 것이다. 이 대화를 하고 있던 때는 5월이었다. 풀이 한창 자라고 있을 때였다. 더군다나 군부대 풀들은 마법 같은 성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초병이 더욱 중요한 역할이었다. 우리 부대엔 예초병이 총 3명 있었는데, 전부 2019년 3월 군번이었다. 그러니까 곧 전역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부사수 충원이 급한 상황이었다.



"취사병은 어차피 취사병 특기받은 애들 받아서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예초병은 누구나 자원해서 할 수 있어. 


어때, 풀 깎을래? 아니면 밥 지을래? "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 한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내 1년 5개월의 군생활을 결정한다. 



"중대장님,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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