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열음 Dec 03. 2024

요란한 독립을 꿈꾸는 애

동생이 이사를 한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공모전을 준비한다며 혹은 술을 마신다며 밤을 새우고 아침에 들어오는 일을 간헐적으로 두 해 보내고 난 뒤 그 애는 결심을 했다. 별안간 수술을 받게 된 누나가 아빠의 도움으로 300만 원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은 주춤했겠으나 수술비보다 더 많은 보험금이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고 안심했을 것이다. 이제 나가도 되겠구나.


오늘 저녁은 김장 김치에 어울리는 수육을 준비했다. 약 일 년 만에 만드는 삼겹살 수육이었다. 어떻게 만들어도 맛이 없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유튜브를 보면 사 먹는 것만큼 부들하고 포슬하다. 김장철이 오면 그 맛이 떠올라 집앞 정육점에 들른다. 오랜만에 잘 차려진 저녁 밥상을 먹으며 그 애는 말한다. 이번 방학부터는 공장에서 야간 알바를 하겠다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티비를 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배가 고파서인 줄 알았고, 그러다 그냥 말을 얹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정말 티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애는 한 달간 야간 알바로 내 월급보다 많이 벌 요량이다. 그 정도면 값싼 보증금을 모으고도 남을 것이다. 언제 나가는지, 얼마나 살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빠 눈치가 보여 그냥 으음, 하고 말았다. 나 대신 그가 할 법한 대답이었다.


간만에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며 아빠는 조깅을 나갔다. 수육이란 게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넣고 시간 조절을 해야 하니 아빠는 잠시 생각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리에는 크게 부지런하지 않지만 운동에 있어서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 저녁 8시가 다 되어도 30분 거리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나가 뛰듯이 걷는 사나이다. 운동으로만 채워지는 육체적인 압력이 있는 것 같다. 허한 마음을 꾹 눌러 채우거나 시끄러운 속을 응축해 소거시키거나.


“그래서 너 언제 나가려고?” 아빠가 나간 틈에 그 애에게 묻는다. “내년 2월쯤 생각중. 근데 그때면 어차피 좋은 집들은 많이 빠졌을걸. 그래도 나간다는 게 중요하니까.“ 맞다. 집이 어떻든 가격이 어떻든 일단 나간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나 나가면 아빠 많이 심심하겠지?“ 격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마음이 요동친다. ”당연하지.“ 그렇다고 나가지 말라고는 안 한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생각보다 외로울 새도 없을 것 같아. 어차피 아빠도 워낙 밖으로 많이 나가니까.” 이번엔 그 애가 말하는 즉시 대답한다. ”그건 아니야.“ 자신 있게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네가 나가면 아빠가 이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얼마나 고요히 조용히 먹고 자고 생활할지 벌써 보인다. 그 애가 외박하는 날, 내가 자취방에 머무는 동안 아빠는 벌써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까. 가끔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것 말고는 말할 거리도 없을 걸 안다. 일터에서도 아빠는 대부분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다.


내년에도 나는 일주일에 3일씩 집에 내려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꽉 꽉 채워진 약속 때문에 한 번이라도 밥을 같이 먹으면 다행일 테다. 그렇다면 그 애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집에 오려나. 이미 자기도 알고 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오는 걸 보면서, 자기는 집을 나가면 많이 안 올 것 같다고 벌써 예언하고 있으니까. 있으면 잘하지만 없으면 그냥 없을 그 애를 안다.


나는 스물 여섯에 첫 자취방을 얻었다. 전부터 간절히 얻고 싶었지만 사실상 취업 때문에 타의로 얻게 되었다. 그 애는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대학을 다니지만 밤샘 작업이 많고, 술약속도 많고, 여자친구도 많다. 내가 조용한 마음으로 나가고 싶었다면 그 애는 요란한 마음으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예전엔 아빠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내가 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조용한 독립을 꿈꾸는 애가 보통 더 위험한 쪽이니까.


그런데 그 조용한 독립을 실현한 애는 매주 집에 내려와 살고, 요란한 독립을 원하는 애는 벌써 안 돌아올 생각이다. 물론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그 애가 없는 집을 생각하면 벌써 한숨소리가 들린다. 조용해서 숨 쉬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내가 없이도 아빠랑 도란거리던 목소리, 이유 없이 우리 침대에 털썩 누워서 자기 얘기를 쏟아놓는 목소리도 없겠지.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때려주고 싶을 만큼 뻔뻔한 얼굴도 안녕…


그래도 우리집은 계속 굴러갈 거다. 아빠는 계속 밥 먹고 조깅을 나갈 테고 주말이면 골프로, 축구로 바쁠 테니까.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고 여자친구와도 시간을 많이 보내겠지. 나는 매주 와서 아빠랑 한 번의 식사를 겨우 할 테고 그러다 미안해지면 이번처럼 집앞 정육점에 가서 수육 거리를 사올 것 같다. 오랜만에 잘 먹어서 배가 안 꺼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뿌듯한 한편 죄책감이 들 것이다. 아마 나는 아빠를 바라보는 평생 그 마음일 것 같다.


사랑은 왜 이렇게 입체적인가. 그냥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걸까. 안타까운 것도 슬픈 것도 뿌듯한 것도 미안한 것도 왜 모두 사랑의 일부여야 하는가. 사랑은 책임과 인정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받은 사랑을 보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래 자주 수육을 삶아도, 나와 그 애의 마음을 합쳐도 아빠가 나와 그 애 하나씩을 바라보는 마음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