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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Dec 22. 2023

추운 겨울날, 결혼기념일

남들은 겨울 방학을 앞두고 방학 특강을 준비할 때 나와 아이는 방학 때 뭘 할지 놀 궁리를 하고 있다. 아직 방학은 남았지만 이미 학기 말, 연말이다 보니 마음이 들떠있다. 이미 방학이라도 한 듯 아이는 연말에 음악회를 예매해 달라고 했다. 언제든 문화생활이라면 대환영인 나로서는 바로 오케이. 아들과 나는 연말 공연을 예매했다. 남편은 회사일로 바빠서 패스. 근데 그 공연일이 바로 결혼기념일이었다. 예매를 하던 날 익숙한 날짜, 결혼기념일인 걸 깨달았는데 정작 당일에는 까먹고 있다가 공연장을 향할 때에서야 기억이 났다. 사실 뜻깊은 날인데 나의 결혼기념일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첫해 결혼기념일부터 함께 할 수 없었다. 첫 결혼기념일에 하필 내가 외국 출장이 잡힌 거다. 15여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다. 결혼기념일인데 혼자 보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에 나는 호텔 로비에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친구들과 어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지 어이가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어서 그런 걸까? 그 뒤로도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어물쩡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나마 10주년 때에는 특별하니까 기념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알고 보니, 햇수를 잘못 세어 9주년 때 간 걸 다녀와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 10년이 되던 해에 다시 제대로 여행 떠났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십오 년쯤 된 건가? 가끔은 몇 년도에 결혼을 했는지도 헷갈린다. 너무 무심한 건가 싶으면서도 무난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다가도 안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 남편과 똑닮은 아들과 함께 미슐랭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즐겼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잰걸음으로 걸어오시길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잡아왔더니 말을 붙이신다. 아들이 너무 귀엽다며 친근함을 표하셨다. 공연 좋으셨냐고 넌지시 물으니 너무 좋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혼자 공연을 다닌다고 하셨다. 추운 겨울날, 할머니 옆에 짝꿍이 있었으면 더 따뜻해 보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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