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어떻다고요?
part 3. Happily ever after
발달센터에서 놀이평가를 하고 소견을 들으러 가는 날 나는 영상 두 개를 준비해 갔다.
하나는 내 얼굴에 포스트잇을 이마, 코에 붙인 뒤
입김을 후, 불어서 날리면 아기가 깔깔 웃으며 종이를 주워 다시 내게 내밀면서 더 해달라고 요구하는 영상과 또 하나는 옥수수 알을 내가 입에 물고 장난을 치면 아기도 소리 내어 웃으며 나를 따라 하는 영상이었다.
내가 왜 이런 영상들을 준비해서 갔는지 눈치챌 만한 사람은 챘을지도 모르겠다.
아기는 놀이 검사 당일 대기하는 내내 단 1초도 의자에 앉아있지 않은 채 생 야생의 동물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선생님도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셨다.
놀이 평가실에서는 엄마인 내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장난감들에만 몰두를 했고 , 검사를 진행하는 선생님이 중간에 두어 번 "우와 재밌겠다" , "기차가 칙칙폭폭" 하고 말을 걸었지만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지 조차 않았다.
호명 반응,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어려운 것은 자페 스펙트럼의 가장 흔한 모습이고 검사 당일 누가 보아도 평범한 아이의 반응이라고 보기 어려웠기에 나는 발달지연, 자페 스펙트럼의 자료들을 검색하고 읽어보며 동시에 아이 영상과 함께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부분도 정리를 해갔는데 선생님은 영상을 보시고 검사 당일에 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 같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아직 아이가 많이 어리고 발달해나가고 있는 월령이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지켜보다가 36개월 전후 큰 병원을 가보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검사 당일에 호명 반응과 상호작용이 거의 안 되는 것처럼 보였으니 원한다면 놀이치료를 시작해보는 것을 권하셨다.
이 시기부터 나는 애들 다 그렇지, 크면 다 나아져, 애 멀쩡한데 왜 그러냐, 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힘들었다.
분명 내 아이가 평범한 발달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정확히 어떻다는 건지 정의를 들을 수도 , 스스로 내릴 수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곳도 없이 36개월을 기준점으로 잡고 놀이치료와 함께 엄마 스스로 알맞은 교육을 시켜나가야 했고 개입이 빠를수록 아이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여 아기는 19개월 무렵 어린이집을 옮기고 놀이 치료를 시작했다.
놀이치료 , 언어치료를 병행하는 동안 아이의 상태는 나를 때때로 절망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상호작용은 아주 조금씩 향상되어갔다.
시간은 흘러 흘러 아기가 37개월이 되었고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베일리 검사를 받았다. 1:1로 검사해 주시는 선생님이 아이의 산만함과 급한 성격이 학습이나 발달에 많이 방해가 되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을 만큼 아기는 내 속도 모른 채 검사시간 내내 엄청나게 산만했다. 내가 어떻게 보시냐 묻자 자폐 유무나 발달장애 등 판단은 교수님이 해주실 거라고만 하셨다.
애타게 기다린 검사 결과는 2주 후에 받으러 갔는데 자폐스펙트럼은 아닌 것 같다,라고 하셨고 모든 영역에서 또래보다 많이 느린 상태에 대해 설명 들었다. 우선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시며 현재 치료는 유지하면서 10개월 후 , 올해 48개월에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아이가 37개월인데 24개월 가까이 느린 영역도 있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속이 적잖이 상했다.
어느 정도 따라잡지 않으면 또래집단에서의 경험이 아이의 성격에 반영될 테이니 그것 또한 걱정이었다.
검사 결과를 듣고 나는 오랜만에 낮술을 마시고 푹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약간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꼈지만
아이를 위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참을 느꼈다.
이미 주어진 것은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과정이 우당탕탕 우여곡절이 있을지언정 우리는 결국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굳게 믿기로 결정할 테니 아가 너도 힘을 내서 건강히 자라줘, 내 안의 사랑은 다 너에게 줄게. 하고 빌었다. 그 기도는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는 더디지만 멈추지 않고 조금씩 자라고 있고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하며 함께 "happily ever after "를 향한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