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절반쯤 실업자가 되었다.
계획하여 채워둔 올해의 수업 중 3분의 1이 폐원과 인원미달로 2월 마지막주에 갑자기 수업 개설이 취소된 것.
새해 내가 계획한 경제적 계획은 실행도 하기 전에 갑자기 물거품이 되었다.
다음 달부터 갑자기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니, 학교에 가서야 생각난 무서운 선생님의 숙제 같은 공포다.
당장 해결할 수 없어 맞이하는 재앙.
No money, No power를 외치며 덜덜 떨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이김에 쉬면서 글도 다시 좀 써보고 몸도 돌보고 천천히 생각해"라고 한다.
오! 복권이 당첨되면 나는 이 사람과는 공유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반대로 다투거나 이 사람 때문에 서러워죽겠을 때면 복권당첨 되면 나 혼자 다 쓸 거야라고 생각한다.
유치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걸.
그리고 코앞에 있던 3월이 왔다.
수업이 텅 빈 오전의 자유는 낯설고 4월의 월급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지만 작년에 바빠서 도저히 엄두도 못 둔 것들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있다.
늘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던 혼돈의 자동차 트렁크 정리를 했다.
(그동안 망가진 유모차는 왜 버리지 못하고 싣고 다녔던 건지 이 심리 아시는 분?)
수업 외 회사업무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수업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한낮에 혼자 카페에 갈 수도 있다.
마치 영화에서 한 6개월 쉬어, 하고 강제로 좌천당해 내려간 시골에서 오히려 뜻밖의 행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4월 급여를 보고 호러로 장르가 변할지라도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서 나를 지켜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경주마처럼 달리겠노라 다짐한 계절에 오히려 전에 없던 여유를 누리니 아리송한 기분이다.
절반의 실업자가 되고 나니 가장 수월해진 것은 육아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더 이상 젊지도 쌩쌩하지도 않은 나는 하나뿐인 내 아이를 기르는데 낑낑대며 버거워했는데 생각해 보면 아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부터 지금껏 일이 너무 바빴고 불안정했기에 더욱 힘겨운 육아를 할 수밖에 없었겠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된 봄을 맞이하고 이제 당분간 여유로운 육아를 즐길 수 있는 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즐겁고 행복하다.
"그렇게 좋아?"
아이를 보고 실없이 헤실헤실 웃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좋냐고? 아이는 내 삶의 빛이야,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내 손의 반 밖에 안 되는 작은 손으로 자신의 간식 접시를 달그락대고 설거지를 한다.
뭐 하는 거냐고 묻자 엄마가 힘들어서 설거지를 했다고 대답해 준다.
내가 힘이 들까 봐.
아이가 나의 걱정과 불안들을 소멸시킨다.
그래. 반쯤 실업자 되었으니 반만 워킹맘인 셈이고
이 시간에 나도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게.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내어주는 시간인가 보다.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마음을 조금쯤 기댄 채 나의 힘을 충전한다.
내 계획보다 멋진 우연들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기회인데 상황이 나에게 유리한 것 같지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함을 느낀다.
이 작은 쉼표의 시간을 손해라고 받아들이지 말고
그동안 부족했던 나의 최선에 대한 작은 쉼표의 시간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기로 결심했다.
봄방학이 온 셈이다.
짧지만 달콤한 봄방학을 보내고 새로운 학기를 즐거이 맞이하면 되겠다.
불안아,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