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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Aug 09. 2021

백수는 뭐하고 지내?


지역별로 '한 달 살기'가 유행인 요즘 뉴질랜드에서 '백수로 살기'를 실천 중이다. 여기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하다가 "어떤 일 해?"라는 질문을 들으면 "나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라고 머쓱하게 대답을 하게 된다. 전혀 머쓱할 게 없지만 나 홀로 집에서 24시간을 온전히 내게 쏟아붓는 일상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 아무도 없는 꽃밭을 걷는 기분이다. 과거의 것들은 금방 전락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만큼 우울해질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하면 남이 벌어주는 돈으로 편히 쉬는 삶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답답한 하루가 되풀이될 뿐이다.



일을 할 수 없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독서, 운동, 공부가 금방 떠올랐다. 대게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일상에 녹여 만들면 되겠다. 먼저 핸드폰 속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플을 삭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소중한 일부라면, 핸드폰 만지는 시간은 쓸데없는 낭비일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배가 고파질 때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는 시간을 비워 그 시간에 운동을 나갔다. 이불속에서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는 동안 지나쳐간 바깥에서의 아름답고 잔잔한 모습에 감탄하며 동시에 과거의 아침 시간을 반성하게 되었다. 고작 호숫가 두 바퀴를 달리고 난 후인데 세상과 가까워진 상쾌함이 밀려들었다. 다른 날에는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카드를 발급하고 한국 가이드 책을 몇 장 읽었다. 원칙에 어긋나는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 한국이었면 당연한 것들을 영어로 소통하며 필요한 일 처리를 하고 나니 스스로 대견함에 빠져 온종일 뿌듯함을 느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일까? 비록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부응하며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득 이런 하루가 지속되어도 괜찮을까 의구심이 들 때면, ‘내가 항상 옳다는 것을 잊지 말자’라고 다짐해본다. 이런 근심이 든다는 것은 현재 큰 근심을 할 필요가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뒤집어 생각하면 불행이 곧 행복이다. 불행과 행복의 연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내 존재를 찾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도 나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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