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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Aug 31. 2021

미라클 조깅


‘Health is the new wealth.’라는 말이 생겨난 만큼 현대사회에서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고 출퇴근 전후로 필라테스를 다니며 건강해지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 중에 한 명이었다. 필라테스 이전에 ‘플라잉 요가-핫요가-요가’를 하며 정적인 요가활동을 섭렵하고 다녔다. 형형색색의 요가복을 입고 곧게 펴진 허리에 만족하며 언제 어디서든 운동은 곧 요가였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이 동네 요가센터를 찾아보는 일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근방에 물리치료사가 운영하는 센터가 하나 있었다. 사이트를 즐겨찾기까지 해두었지만 정작 뉴질랜드에 와서 요가 센터까지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요가밖에 할 줄 모르던 내가 요가복에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은 채 산천을 끼고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맨 몸으로 무작정 달려보기도 한 달 차, 그간의 놀라운 변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나만의 조깅 루틴[계단 오르기 – 크게 한 바퀴 돌기 – 작게 한 바퀴 돌기 – 계단 오르기] 순서대로 다 하고 나면 한 시간 조금 넘게 소요된다.





-1일 차

우리 동네 집 값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아주 작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 계단을 오르는데 겨우 다섯 번째부터 숨이 차 올랐다. ‘헉.. 헉..’ 계단 하나, 들숨 날숨 한 번 끝에 힘겹게 언덕 위를 올랐다. 내려오는 데 무릎 관절 다 나가는 철퍼덕 소리가 크게 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단 오르기 만으로도 굳어버린 다리를 끌고 호숫가로 내려갔다. 빨리 걷기로 몸의 열을 올리다가 마음먹고 달려본 게 없던 일이 된 것처럼 10초 이상 뛸 수가 없었다. 처절한 몸의 현 상태를 그대로 마주하는 기분은 근 5년 동안 다닌 요가에 대한 배신감으로 물들었다. 첫날은 상쾌한 공기를 쐬며 밖에 나왔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2일 차

어제의 일을 다행히 몸이 기억하는지 뜻밖의 컨디션에 달리기가 쉬워졌다. 무려 10초 이상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단 하루 만에 내 기록을 깨다니! 시간을 재면서 달린 게 아니라 객관적인 기록은 알 수 없지만 달리는 거리가 확실히 늘어났다. 그리고 조깅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듯이 전신에 알이 배겼다.



-3일 차

알 배긴 건 금방 풀리고 있는데 엉덩이 위쪽에 결린 느낌을 받는다. 운동의 대가가 아니라 잘못된 자세로 인한 불편함이다. 조깅할 때 어딘가 힘을 잘못 주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게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제 10초는 무슨, 족히 3분은 꾸준히 달릴 수 있다. 하루하루 올라가는 상승곡선에 날씨만큼 기분도 상쾌해진다.



-4일 차

주말이었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먹구름이 하늘에 많이 보였다. 호숫가에 나가보니 날씨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자 예상대로 비가 내렸지만 굴하지 않고 조깅을 지속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궂은 날씨에도 운동하는 부지런한 나에 땀과 비에 젖은 양만큼 흠뻑 도취되었다. 네 번째 조깅은 몸이 확연히 가벼워져서 오래 달리는데 무리가 없었다. 반면에 주말이라 함께 뛰러 나온 남편은 1일 차의 나처럼 헥헥 거리며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5일 차

골반에 통증이 생겼는데 조깅을 멈출 만큼은 아니었다. 이 정도 고통으로 집에 있으려고 하니 온 몸이 나가라고 빗발치듯이 뻐근하고 답답해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조깅을 한 결과는 아쉽게도 좋지만은 못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달렸는지 승모근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상체 스트레칭을 간과한 탓일까, 국민체조로 성난 몸을 달래야 했다.



-6일 차

결국 조깅은 하지 못했다. 전날의 고통과 다른 신체부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릎이랑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달릴 수 있는 노릇이 되지 못했다. 뒤뚱뒤뚱 걸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고비는 한 번에 몰아서 온다는 말처럼 입병까지 났다. 건강해지려다 몸만 더 성치 못하게 만드나 싶었지만, 오히려 집에만 있는데도 전보다 컨디션이 나았다. 다섯 번의 조깅으로 몸에 비축해둔 체력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탱해주도록 했다.



-이주 차

무릎과 허리의 불편함에 이틀 쉬고 다시 달렸다. 이제는 제법 걷기와 달리기를 균등하게 반복하며 운동할 맛이 나기 시작했다. 한참 조깅을 하는데 맞은편 할아버지가 보폭을 넓게 하는 게 좋겠다며 오지랖을 부려주셨다. 남편도 비슷한 조언을 한 적이 있어서 보폭에 신경을 쓰며 뛰어보았다. 보폭을 보다 넓게 달리니까 종아리가 아니라 허벅지가 터질 듯했다.

 


-삼주 차

생리 기간으로 인해 조깅 휴지기를 가졌다.




-한 달 차

일주일 쉬고 다시 뛰려니 몸 상태가 예전으로 급히 돌아가려는 걸 겨우 막았다. 평소에 달리던 거리의 70퍼센트만 달성했는데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묵직해졌다. 컨디션에 따라 강도를 조절해가며 달리면 기존의 루틴은 큰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겠다. 일주일 만에 가파른 바람을 마주하며 달리니 나무랄 데 없이 상쾌해진다.





단순 건강 목적으로 시작한 조깅은 기대한 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체력 상승은 물론이며, 이제는 야밤에 과식을 해도 예전만큼 뱃살이 잘 늘어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이면 잘 보이는 복근에 지난 야식은 쉽게 용서되기도 한다. 따로 근력 운동 없이도 일정 부위에 지속되는 힘에 탄탄해진 허벅지나 엉덩이를 볼 때의 뿌듯함은 감출 수 없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는 극심했던 생리통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생리통을 막을 궁리가 없어서 늘 진통제에 의존하고 말았는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생리통 없이 지나 간지 모를 일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나서 조깅에 대한 무한 신뢰는 0에서 110으로 늘었다. 무엇보다도 얼마큼 잘 달렸는지 측정하기보다 오늘도 해냈다는 고양감에 조깅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파란 하늘 아래 숨을 헐떡이며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내가 좋다. 땀으로 범벅된 옷이 몸을 간지럽게 만들어도 과거의 나와 달라진 나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몸소 느끼게 한다. 분명 어제와 같은 코스로 달리는데 어제와 다른 내가 매일매일 재탄생하며 새로운 발돋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각각 다른 일상에서 조깅만은 변하지 않는 일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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