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꿈도 꾸지 않은 단잠에서 깨어났다. 정확히 6시 28분 남편의 출근용 알람 시간이었다.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하루. 피곤하거나 힘들어서가 아닌 침대에 꼼짝 말고 누워있으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에너지를 마음껏 대방출하고 난 다음 날, 방전된 상태로 푹 쉬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이 있다. 대게는 비가 내릴 법한 우중충한 날씨거나 대자연의 기간에 끼었을 때 그렇다. 그럴싸한 원인이 분명한 날에는 유효기간이 끝나기를 잠자코 기다리기만 해도 된다. 이를테면 날씨가 맑아지거나 대자연의 날이 끝나는 날, 텅 비었던 의욕이 알아서 채워지기도 한다. 날씨와 호르몬과 무관한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의 선전포고를 앞세운 하루는 비교적 다루기 힘들어진다. 외부 자극과 관계없이 전두엽의 지시에따라 무기력한 상태로 시작하는 아침은 길고 가느다란 하루를 보내게 될 예감이 든다.
직장인이었을 때의 하루와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백수라고 해서 하루가 길지만은 않다. 처한 상황과 각기 다른 이유로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아침, 오전, 오후, 저녁시간 별로 해야 할 일들에 쌓여 하루가 모자라게 느껴질 때가 많다. 보통의 날들을 제쳐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날을 맞이할 때면 지루함에 쉽게 물들어진다. 다이어리 한 칸을 빽빽하게 채우는 일곱 가지 리스트 대신 펜 하나조차도 집어 들지 않게 된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빈칸은 오늘을 대표하는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태함을 이겨내지 못한 나 자신을 엄격하게 채찍질했겠지. 하루라도 무언가 해내지 않았을 때의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기분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이 짠- 하고 바뀌지도 않는데 어딘가 항상 조급했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자극에 매일 둘러싸여 지낸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음과 주변인들의 달갑지 않은 말소리는 귀를 닫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부단히 따라가려면 핸드폰을 손에 놓을 새가 없다. 각종 미디어와 SNS를 오가며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는 정보량은 엄청나다. 매일 시끄럽고 바쁜 하루가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은 연비가 소모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날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바쁘고 시끄러운 일상에 대한 반감이 터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어떠한 자극을 주지 않고 무의 상태가 되어본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봐도 좋다. 침대에 누워 천장과 눈싸움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자극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보도록 한다. 무기력하고 지루함이 아닌 평온함을 받아들이며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알아차린다. 지루함을 견디는 시간은 곧 두려움, 불안함, 근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