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 된 포도밭
시옹성 Chateau de Chillon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중국의 인문학자 위치우위의 책 『유럽 문화기행』 2권을 읽으면서 표지에 쓰인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육중하고 아름다운 성 하나가 통째로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은 작은 사진이지만 장관이었다. 게다가 '유럽 정신의 보석을 캔다'는 문구에 혹해 읽게 된 책이라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결국 일정을 레만 Leman 호 쪽을 통과해 스위스로 진입하는 식으로 변경하고 몽트뢰까지 방문했다. 덕분에 프레디 머큐리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좋은 경험이었다. 게다가 레만호가 준 첫인상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강변을 따라 긴 산책로를 걸으며 이런 호수 하나가 엄청난 자산임을 느꼈던 순간이다. 그리고 목적한 대로 방문하게 된 시옹성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곳 시옹성이 있는 레만호 만 해도 둘레가 200km니까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다. 이 호수와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듯 성이 존재한다. 엄청난 크기의 자연 암반이 섬처럼 존재했는데 이 위에다 성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레만호가 해자 역할을 하는 성이 된 것이다. 덕분에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성의 느낌을 준다. 게다가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성이라서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다시 생각해봐도 몽블랑 산에다 레만호의 장관에 포도밭 풍경까지 있던 곳은 엄청난 선물이다. 그림 같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한국인들의 방문 역시 많다는 걸 느꼈던 건 한글 안내지까지 있어서였다. 덕분에 시옹성 구석구석을 관람할 수 있었다.
원래 이 성을 지은 건 알프스를 넘어온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전쟁을 위해서도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화살이나 대포를 쏠 다양한 구멍이 있고 병기고가 있어서다. 12세기에 지어졌고 16세기까지 증축이 이뤄진 곳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의 시옹성 내부 관람을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비명소리가 가득했던 공간임을 깨닫게 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쇼킹한 반전을 주는 여행지를 꼽으라면 난 시옹성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충격적인 장면은 죄수의 목을 매달던 처형대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데는 바이런의 역할도 크다. 여행기를 시처럼 남겼는데 <시옹성의 죄수>란 작품이 있다.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였던 '프랑소와 보니바르' 얘기다. 이곳 시옹성 지하 감옥에 1530년부터 1536년까지 6년간 감금됐다. 친절하게 그가 묶여 있던 기둥이 어떤 기둥 인지도 표시해뒀는데 원형 신발 자국이 바닥에 보인다. 쇠사슬로 묶였던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반경이란 의미다.
6년간 그렇게 감옥에 살았고 아버지의 죽음과 형제 2명의 죽음도 목격해야 했다. 그게 압제에 대한 저항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자유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바이런의 시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풀어가는데 ‘누구도 이 흔적을 지우지 말라. 그 자국들조차 폭군에 항거하며 신에게 호소할지니’ 하며 깊은 울림으로 공감한다.
산과 호수 위에서 원래 하나였다는듯 아름다운 성의 모습과 그 속에 존재하는 차디찬 지하감옥, 그게 시옹성이 전하는 메시지였다.
인근의 라보 Lavaux 포도밭도 놓치지 말길.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레만 호숫가에 위치한 12개 마을에서 재배하는 800 km² 정도의 계단식 포도밭이 장관이다. 로마 유적과 함께 발굴된 고대 유물에선 포도주 숭배에 관한 라틴어 글귀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에서 로마 시대부터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기록으로 확인이 가능한 건 12세기 정도다. 로잔의 주교로부터 수도원들이 토지를 하사 받았다는 기록이다. 그 후 400년 정도 땅을 일구고 포도주를 나를 길을 만든 건 수도사들이었다. 14세기부터 인근 농민들이 경작했다. 주로 백포도주를 만드는데 수출은 하지 않고 이 지역에서 모두 소비한다.
이 곳 트레킹 길은 제주 올레 10코스와 ‘우정의 길’이라 우리에겐 더 각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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