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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라이트릴 Feb 27. 2024

탑건, 나의 버킷리스트, 나의 놀이터 #에필로그

나의 하이라이트릴

영화 탑건의 주제곡은 기타리스트 스티브 스티븐스의 화려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하던 라이브바에서  처음 이 연주를 봤을 때, 강렬한 비행기 엔진 소리, 영롱한 종소리 , 공중전하는 전투기의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 이 모든 것을 손으로 내는 기타리스트의 빠르고 현란한 손놀림에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이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치고 싶었다. 시간 날 때마다 그 라이브바에  가서 녹화를 했고 심지어 기타리스트를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나를 위해 느리게 쳐 준 영상을 보고 따라 쳐보았지만 첫 음도 내기 어려웠다. 내게는 가 닿을 수 없는 꿈의 곡이었다.

 '올 해는 1년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이 곡을 꼭 쳐보자.' 이 생각만 15년을 하고 살았다. 올해가 내년이 되고 내 후년, 15년이 지나도록 시작도 못했다. 코로나 3년간은 아예 기타를 내려 놓았다. 어려운 회사 사정으로 일을 쉬고 아이들을 내리 집에서 돌보다 보니, 아이들 걱정 미래 걱정으로 기타는  쳐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밴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획했던 공연들을 취소하고 조용히 쉬고 있었다.  코로나의 암흑기를 지나며 보컬, 기타, 키보드, 퍼커션만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스몰밴드로 연주 하려고 했는데 멤버들 마음에 불씨가 확 붙었다. 음향시설과 녹음시설을 완비한 공연장에서 풀밴드 공연(보컬,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등 모든 세션을 갖춘 공연)을 하기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답사 다녀온 영상을 보니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예쁜 무대였다. 잠재워져 있던 나의 꿈이 떠 올랐다.

 '탑건'

 '아,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해둘 걸.'

 "나 오랫동안 기타 한번도 안 쳐봤는데, 딱 한 달 남은 기간 동안 탑건 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못하면 영영 못할 것 같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그래도 해봐요."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기타 선배님한테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 이번 공연 일취 월장하는 기회로 삼고 싶어서 그러는데 '탑건'해도 될까요?" 선배님의 물음표가 느껴졌다. "가능 하겠어?"

 생각해 보았다. '호텔 캘리포니아' 공연을 했던 2015년을. 그때도 할 수 있겠냐고 못하겠으면 선배님 혼자 하겠다고 했었다. 한달 반 남짓의 시간 동안  욕심내어 연습했다. 하니 되었다.

 딸 아이가 피아노 콩쿨 대회 나갈 때의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아이는 자기 수준보다 훨씬 높은 곡을 두 달 동안 매일 한시간씩 연습해서 결국 해내었다. 나도 매일 두 시간 이상씩 한다면 한 달 동안 못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네 선배님, 저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피아노에 비교를 하자면 체르니 30번을 치는 내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콩쿨에 들고 나가는 격이다.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날짜를 달력에 동그라미 해보았다. 날짜를 세며 '매일 한 마디씩 확실하게 연습하자.' , '집중력을 헤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은 비행모드로 해놓자.'라고 생각했다.

 연습할 부분 중 제일 어려운 부분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갰다. 한마디와 더 잘게 자른 반마디만 0.5배속으로 연습했다. 힘들고 지겨운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 '포모도로' 기법(집중력은 최초 25분간 가장 높다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25분만 학습하고 5분간 쉬었다가 다시 새로운 25분을 이어가는 학습 사이클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며 학습 성과를 낼 수 있다. 프란체스코 시릴로가 개발한 학습및 시간관리 기법.)으로 그 반마디를 연습했다. 속도를 0.5배속과 0.7배속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25분간 집중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25분 집중 후에 5분간 물마시며 스트레칭하고 다시 25분간 집중하고 쉬는 2시간 코스를 운용했다. 첫날, 다음날, 그 다음날 이후로도 계속했다. 난이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매일 한마디씩 진도 나가자는 계획은 지킬 수 없었지만  포기 하지 않고 '한마디 그 부분만’을 반복했다. 5일 정도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앞 마디와 뒷 마디를 추가하여 연습했다.

 일주일을 가장 어려운 부분에 매달렸더니 느리지만 어느정도 칠 수 있게 되었다. 킬링 파트 진입 장벽을 넘으니 다른 부분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 되었다.  일주일하고 하루만에 어리숙하지만 0.7배속으로 완주했다.

 포모도로 알람을 키고 마디와 마디를 연결하여 넘어가는 부분에 집중했다.

 그 다음, 전체를 연주해 보았다. 턱턱 걸리는 부분이 여러 곳 있었다. 새로 발견한 취약점을 다시 포모도로 알람을 켜고 연습했다.

 영상으로 찍으며 피드백 해보았다. 계속 틀렸다. 소리도 좋지 않았다. 좋아질 때까지 녹화하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막히는 부분을 다시 알람을 키고 연습했다.

 이제 ‘연습이 재미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 처음 이 곡을 시작할 때 내 소리가 마른 장작 같았다면 지금은 떡처럼 줄이 탄력 있게 달라붙는 느낌이다. 포모도로 알람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원곡을 목표로 속도를 높이니 정확도가 뭉그러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번은 느리지만 매우 정확하게, 한번은 최대한 빠르게 번갈아 연습했다. 정확도와 속도가 점점 상승하여 어느 지점에서 수렴하였다.

 하늘도 나를 도우려는지 연습을 더 하고 싶어서 신청해 둔 연차가 모두 나왔다. 신이 났다.

  반주 음원에 맞추어 스티브 스티븐스가 되어 보았다. 내가 아닌 내 안의 무언가가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내 소리에 내가 숨이 막혔다. 흐름에 올라탔다. 시간이 빨라지는 느낌이다. 밴드 활동을 했던 20년의 시간이 흘러 나왔다. 멤버들과 비행하며 합주 했던 날들을 살펴보니, 지금 이 순간이 클라이막스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합주실에 갔다. 멤버들을 마주하고는, 선배님한테 ‘저만 열심히 하면 되요.’라고 했던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기타만 어렵고 다른 파트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드럼, 키보드 등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두 각자의 스케줄 근무를 하느라 단 두번의 합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두 번의 기회를 서로 다른 연주를 하며 소모해 버렸다. 절망감이 느껴졌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부탁으로 갑자기 하게 된 곡이지 않은가. 육아와 병행하며 없는 시간을 추가로 더 쪼개어 써야했을 멤버들이다. 합주가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 순간, “탑건 멤버들아, 연습 조금만 더 할 수 있을까?”라며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멤버들이 어려워 하는 박자와 코드, 곡의 진행 순서를 반복해서 알려 주었다. 베이스는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공연날. 오프닝 곡이다.

 곡의 완성도 면에서 걱정이 되어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다. 100%까지 연습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호텔 캘리포니아 기타 솔로를 연습 했을 때보다 체계적으로 연습했다고 자부한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동그란 무대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힘에 집중했다. 편안하게 내려 놓았다. 틀리면 틀리는대로 따라갔다. 그랬더니 최종 리허설 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 곡을 어려워 하던 모든 멤버들의 연주가 조화를 이루었다.

 찰나의 시간으로 바뀌어 박수와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얏호” 기타 선배님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최고” 딸아이의 깡총깡총 뛰는 모습과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곡이 끝난 후, 후배들이 마치 짠 듯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선배님, 이 공연 완전 찢었어요.”

남편은 내 연주 영상을 각종 SNS에 올렸다. ‘듣기는 편안해도 굉장히 까다로운 곡’ ‘최고로 열심히 준비’ ‘소울이 느껴짐’등의 수식어를 댓글로 주고 받으며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뿌듯했던 것은 이곡을 처음 듣고 가르쳐달라고 졸랐던 그 기타리스트(나의 스승)가 ‘great job’이라고 댓글을 달았던 것이다.

 탑건 공연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해두자.

 비록 이번 공연,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최고의 몰입으로 나의 영혼을 불어 넣었기에 후회는 없다.

 '탑건'은 나의 놀이터이다. 매일 놀고 힘을 얻고 다음 도전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곳.

 덕분에 인생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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