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내 예상대로라면 ‘뇌수막염 입원기 (3)’에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4)까지도 이어질 것 같다.
일요일 아침, 어제보다 조금 더 자고 7시쯤 눈을 떴다. 시간이 되면 간호사님이 와서 혈압·체온을 체크하고 수액 상태도 확인해 주신다. 혈당 체크는 하루 네 번, 몸무게는 두 번. 스테로이드를 맞으면 혈당이 오를 수 있어서 관찰하는 것이고, 몸무게도 그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잘 먹지도 않았는데 1kg이 늘었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입맛은 없었지만 아침을 억지로 먹고 샤워를 했다. 샤워 후 기분이 꽤 상쾌해져 병동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읽고 싶어서 사두고 못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20대엔 일본 문학에 빠져 일본어 공부까지 했고(JLPT 1급까지 땄지만, 물론 오래전에 만료됨), 도서관의 하루키 책은 닥치는 대로 빌려 읽었다. 이 책도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책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에 이혜성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스테이폴리오 장인성 대표님이 “지인에게 가장 많이 선물하는 책”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더는 미룰 수 없겠다 싶었다.
무료한 병실 생활에 이만한 책도 없을 것이다. 나도 러닝을 한 적이 있다. 비록 5일 만에 그만뒀지만. 이 책을 읽으며 퇴원하면 다시 뛰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비록 8~9분 페이스로 30분 뛰던 수준에 불과했지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붓기가 싹 빠진 상태에서 샤워할 때의 그 상쾌함은 평생 누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입원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볼살을 주물럭거리며 반겨줬을 유아부 아이들의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올라왔다. 사실 오늘 오전에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주일이라 그런지 회진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 알면 섭섭할까 싶어 중학교 친구들에게 입원 소식을 카톡으로 보냈다. (동네방네 소문 내는 중이다.) 친구 한 명이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걱정과 근황, 연말에 보자는 얘기를 한참 나눴다. 병문안을 오겠다는 걸 말렸다. 사실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아직 모르신다. 나는 응급실에 와서 간단히 처치하고 퇴원할 줄 알았다.
잠깐 카페에 음료를 사러 갔다가 간호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판독실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세요.” 어젯밤 찍은 MRI, MRA 결과를 설명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여러 장의 뇌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다행히 가장 우려했던 세균성 뇌수막염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뇌혈관에 다른 문제가 보인다고 했다.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아마 뇌척수액 검사가 실패해서 MRI를 찍게 된 것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른다. 아스피린 처방이 바로 떨어졌고, 뇌혈관 CT를 당장 찍으라고 하셨다. 내일 아침엔 피검사를 여러 개 시행한다고도 했다.
뇌혈관 CT는 조영제를 넣고 진행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바늘이 두껍고 조영제가 들어갈 때 느낌이 조금 성가실 수 있다고 미리 알려주셨다. 한 번 혈관 잡는 데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촬영 테이블에 누웠다. 조영제가 들어오자 어제와는 다른 뜨거운 느낌이 퍼졌다. 소변을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미리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저… 제가 방금 소변을 본 것 같아요…” 하고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내 몸 곳곳의 혈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 몸에 깔린 혈관 길이는 약 10만km, 서울–부산을 200번 왕복하고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도는 거리다. 나는 이런 사실만으로도 내 몸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고도의 지혜를 가진 창조주의 솜씨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조영제가 퍼지는 감각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촬영은 금방 끝났지만 이후의 부작용이 조금 힘들었다.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갈 때마다 기분 나쁜 찌릿함과 간지러움이 짧지만 강하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맞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 느낌을 겪는다는 사실이 조금 괴로웠다. 조영제 라인이 수액 라인과 가까워서 테이프를 떼다가 수액 바늘이 빠졌고, 다시 잡아야 했다. 오른쪽이어서 불편했는데, 되려 잘된 셈이다.
남편과 아이들과 잠깐 통화했다. 저녁은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입맛이 없어 카페에서 사온 복숭아자두주스를 마셨다. 평소엔 좋아하는 상큼한 맛인데, 이날은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을 대신하고, 자정부터 내일 아침까지 금식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마시지 말라니까 괜히 더 목이 말랐다.
유튜브에서 다니엘 기도회 영상을 몇 개 찾아봤다. 11월에는 21일간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되는데, 11월 초엔 너무 바빠 알고리즘으로만 봤을 뿐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이때 보라고 남겨두셨나.
아, 목말라.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인은 민주주의를 갈망했지만, 나는 그냥 물을 갈망하는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