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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나 : 악당이 된 영웅

HEEL

by 온시프트


영원히 선역일 것 같던 '존 시나(John Cena)'가 악당이 되었다.


영화에나 존재할 것 같은 히어로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존 시나'를 빼놓을 수가 없다. WWE라는 프로레슬링을 아는 사람들이나 아는 인물이겠지만, 과거 김연아 선수가 한창일 시절 미국 캠페인 단체 '두 썸씽'에 따르면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자선 활동을 많이 한 운동선수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캐릭터에 충실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선 활동을 많이 했던 그리고 하는 인물로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호감이 가득한 대표적인 베이비 페이스(선역)이다.


하지만 2025년, 22년 만에 그는 일리미네이션 챔버에서 현 시대 아이콘인 코디 로즈를 배신하며 전 세계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된 WWE의 초대형 프로젝트였으며,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일리미네이션 챔버 이후 단 하루 만에 관련 영상 조회수가 376만 회를 기록했고, 북미 팬들은 물론 전 세계 프로레슬링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나무위키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화제성을 입증했다. 이번 그의 턴힐(악역 전환)은 WWE 역사에서 헐크 호건의 nWo 합류만큼이나 상징적인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1. 아이콘의 시작 : 존 시나의 시작

1) 절대 포기하지 마

존 시나는 단순히 프로레슬러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그의 영향력과 위상이 너무나 크다. 오늘날 그는 WWE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하나의 독립적인 브랜드로서 전 세계적으로 폭넓고 충성도 높은 팬층을 구축한 문화적 아이콘이다. 이러한 그의 성공은 단순히 링 안에서의 경기력이나 마이크 실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진정성 있는 인성과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절대 포기하지 마(Never Give Up)"라는 그의 대표 슬로건은 단순한 마케팅 문구를 넘어, 그가 실제 삶에서도 철저히 실천하는 삶의 철학이 되었다.


2) 첫 걸음

존 시나의 프로레슬링 여정은 1999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독립 프로모션인 Ultimate Pro Wrestling(UPW)에서 '더 프로토타입(The Prototype)'이라는 다소 특이한 캐릭터로 데뷔했다. 이 캐릭터는 반인반기계(?)의 뭔가 기괴한 로봇 컨셉트로, 당시로서는 참신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실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기믹이었다. 비록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이 시기는 그가 레슬링의 기본기를 다지고 존재감을 키우는 데 중요한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그의 포텐은 오래지 않아 당시 업계 최대 단체였던 World Wrestling Federation(WWF, 후에 WWE로 개명)의 눈에 들어왔고, 2001년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본격적인 메인 로스터에 합류하기 전, 시나는 WWE의 개발 리그인 *Ohio Valley Wrestling(OVW)에서 훈련 과정을 거쳤다. 이 기간 동안 그는 OVW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미래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3) 커트앵글과의 경기

존 시나의 WWE 메인 로스터 공식 데뷔는 2002년 6월 27일, 스맥다운(SmackDown)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WWE는 새로운 세대의 스타를 찾고 있었고, 시나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의 데뷔 경기는 당시 최고의 기술파 레슬러였던 커트 앵글과의 대결이었다.


'루스 어그레션(Ruthless Aggression)'이라는 구호와 함께 커트 앵글의 뺨을 때리며 시작된 그의 데뷔전은 꽤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신인으로서 베테랑을 상대로 보여준 실력은 나름 주목할 만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적인 첫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후 몇 개월간 시나는 뚜렷한 캐릭터 정체성 없이 비교적 평범한 모습으로 당시 관중들에게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OVW : 브록레스너, 바티스타, 쉘턴 벤자민 등의 내놓라하는 레슬러들도 활동했던 당시 WWF의 피더 단체


2. 메인 로스터 데뷔 : 커트 앵글과의 경기

주목받지 못하던 나날을 보내던 존 시나는 '닥터 오브 데거노믹스(Doctor of Thuganomics)'라는 래퍼 캐릭터로 등장한다. 나름 신박한 캐릭터였으며, 본인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이전 기믹과는 달리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과 결합해서 그런지 상당히 어울렸다. 그럼에도 어느 로얄럼블에서는 랩을 하며 등장하다가 랍밴댐에게 맞으며 가벼운 이미지로 소모되긴 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대성한 스타가 될 줄은... 참 한 치 앞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랩 배틀 스타일의 프로모와 스냅백 모자, 오버사이즈 저지, 체인 펜던트 등으로 점철된 힙합 캐릭터는 그를 빠르게 주목받는 스타로 만들었으며, 팬들과의 교감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큰 역할을 했다. 힙합 이미지다보니 트래쉬 토킹과 도발적인 애티튜드는 당연했는데, 이는 그의 말솜씨와 독창적인 프로모션 스킬을 보여주는 도구로 활용됐다. 자고로 프로레슬링은 그저 스포츠에 머무르기다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색깔이 짙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팬들의 주목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매우 중요해서 기믹 자체가 마이크웍에 어울리기도 해서 여러모로 좋았다.


3. PG 시대 : 무명 선수에서 업계의 중심으로

1) 시기와 때

2005년, WWE 챔피언십 획득은 존 시나의 커리어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는 타이틀 획득 이상의 의미를 가졌는데,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퍼스널 브랜딩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전환점은 크리스 벤와의 비극적 사건 이후였다. 2007년 벤와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WWE는 기존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 보다 가족 친화적인 'PG 시대(The PG Era)'로 전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바로 존 시나의 진정한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기존의 '닥터 오브 튜가노믹스(Doctor of Thuganomics)'라는 거친 이미지의 래퍼 캐릭터에서 벗어나, 그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Up)"라는 모토를 앞세운 선한 히어로 캐릭터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WWE의 새로운 방향성과 완벽하게 일치했으며, 시나는 가족 친화적 콘텐츠의 대표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이전에는 래퍼 이미지로 강렬한 마이크웍(프로모)을 선보이던 그가, 이제는 존중과 인내, 그리고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시나는 이전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던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상징적 위치까지 확실하게 물려받을 수 있었다.


2) Only One

당시의 상황은 시나의 브랜드 가치 상승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창 떠오르던 스타들인 바티스타가 백스테이지에서 보여준 여러 논란과 부정적인 행동들, 그리고 브록 레스너의 WWE 이탈 등은 존 시나를 회사의 유일한 대형 스타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시나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너는 날 볼 수 없어(You Can't See Me)"라는 시그니처 슬로건과 함께, 그의 손을 얼굴 앞에서 흔드는 독특한 제스처는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 즉각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 제스처는 단순한 세리머니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으며, 어린 팬들부터 성인 관객까지 모두가 따라 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전설적인 업적을 쌓아갔다. 총 16번의 WWE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고, 많은 페이퍼뷰 이벤트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했다. 또한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통한 수백 명의 아픈 아이들과의 만남 역시 링 밖에서의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야말로 기믹과 한 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존 시나는 단순한 슈퍼스타를 넘어 WWE라는 브랜드 그 자체가 되었다.


4. 슈퍼히어로 : 지루해진 팬덤


1) 무적 이미지

프로레슬링을 즐겨봤던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알다시피, WWE 경기 결과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기 중 일부 요소들은 레슬러들의 즉흥적인 액션과 애드립에 맡겨지긴 하지만, 승패와 주요 스토리라인은 철저하게 각본에 따라 진행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디어에 노출 빈도가 높아가는 프로레슬링은 일종의 액션 드라마이자 일종의 뮤지컬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배경에 앞서, WWE 관계자들은 항상 더 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존 시나의 경우, 그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는 지나치게 일관된 승리 패턴을 보여주었다. 간단히 말해, 존 시나는 거의 항상 이겼다. 아니 매일 매번 이겼다.


한창 전성기에 드러선 시나의 캐릭터는 어린이와 가족 관객층을 겨냥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동시에 과도한 '푸쉬'(회사가 특정 레슬러를 지속적으로 승리하게 하며 중요하게 다루는 것)로 인해 무적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는 결국 각종 팬층 사이에서 "너무 예측 가능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2) 지루한 패턴

마케팅 용어로는 '브랜드 피로도(Brand Fatigue)'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관객들, 특히 레슬링의 복잡한 스토리텔링과 기술적 측면을 더 중요시하는 팬들은 시나의 반복되는 승리에 점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시나의 기술적 레퍼토리가 제한적으로 보였고, 그의 경기는 예측 가능한 흐름을 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경기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라곤 하지만 매번 승리까지하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러한 팬덤의 분열은 시나가 등장할 때마다 두가지 함성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Let's go Cena!"와 "Cena S***s!"(성인 남성 팬들의 야유)가 경기장을 양분하는 광경은 2010년대 WWE의 상징적 순간 중 하나였다.


5. 정체성 : 그는 영웅이 맞는가?

1) 존 시나가 마주한 딜레마

흥미롭게도, WWE 경영진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분열된 반응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논란은 종종 더 큰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반응보다 낫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원칙이지 않겠는가? 그런 존 시나를 둘러싼 논쟁은 그를 더욱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고, 이는 WWE의 전반적인 브랜드 가치 유지에 기여했다.


그러나 사실 존 시나 개인에게 본인에게는 이 상황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WWE의 대표 얼굴로서 엄-청난 성공과 인기를 누렸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캐릭터에 한계를 맞이한 셈인 것이다. 실제로 여러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에서 시나는 이러한 분열된 반응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한 백스테이지 영상에서는 특히 심한 야유를 받은 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비즈니스적 페르소나와 실제 감정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인간 존 시나로서의 순간이었다.


2) CM펑크가 던진 질문

특히 2011년 CM 펑크의 '파이프 밤(Pipe Bomb)' 사건은 WWE 내부의 현실과 팬들의 불만을 날카롭게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CM 펑크는 존 시나나야말로 WWE의 상업적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회사가 그를 너무 우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존 시나를 굉장히 복잡한 위치에 놓이게 만들었으며, 그의 캐릭터가 단순한 선역(face)이 아닌 더 뎁스(Depth)있는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존 시나는 이러한 팬들의 반응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프로레슬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WWE가 원하는 "절대적 선역"의 이미지를 끝까지 지켜냈다. 그의 헌신적이면서 물러서지 않는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WWE가 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였다. 그렇다고 이후에 계속 무적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고 패배도 하면서 파트 타이머로서 이제 새 시대를 이끌어갈 선수들의 거름이 되기도 했다.


6. HEEL : 그는 악당이 되었다

1) 헐리우드의 경험

길어질까봐 앞서 얘기하진 못했는데 존 시나의 할리우드 경력은 그의 프로레슬링 페르소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더 락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지라도, 시나는 '트레인렉(Trainwreck)', '블록버스터(Blockers)',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 시리즈, 그리고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DCEU)'의 '피스메이커(Peacemaker)'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왔다. 비록 독보적인 히트작은 없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쌓아온 연기 경험은 결국 2025년 WWE 링 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빛을 발했다.


2) 예상치 못한 배신

2024년, 코디 로즈(Cody Rhodes)를 도와 더 락이라는 '파이널 보스(Final Boss)'에 맞섰던 존 시나는 불과 1년 후인 2025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보를 보여주었다. 20년 넘게 지켜온 그의 선한 이미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영웅의 페르소나를 버리고, 그는 자신이 한때 맞섰던 바로 그 '파이널 보스'와 결탁한 것이다.


이 충격적인 배신의 순간은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극적인 *턴 힐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두 세대를 아우르는 두 영웅, 두 아이콘의 결합은 WWE의 스토리 내 권력 구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현재 WWE에서 가장 강력한 악역 세력인 블러드라인(The Bloodline)과의 연계 가능성이다. 사모아 혈통의 전사들로 구성된 이 집단에 존 시나와 더 락이라는 두 레전드가 합류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악역 팀이 아닌, WWE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의 탄생을 의미할 거라 본다.


*턴 힐(Turn Heel, 선한 캐릭터에서 악한 캐릭터로의 전환)


총체적으로, 존 시나에게는 '진정성'이 브랜딩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WWE라는 무대에서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기믹'이나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 밖에서 보여준 그의 '진실'을 향한 노력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타인의 손가락질에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신만의 나침반을 따라 나아갔으며, 그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의지를 갖고 자신의 캐릭터를 살려냈다. 그가 보여준 인내과 진실로 뭉쳐진 흔들림 없는 정신은, 단순히 팬들의 호응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이들의 존경과 경의를 이끌어냈다. 이제 그는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벗어나 '악당'으로서의 변화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이 손바닥 뒤집듯하는 턴힐을 하고 턴페이스를 했다면, 존시나의 변화는 20년의 장대한 서사 끝에 탄생한 필연적인 결과물인 것만 같다. 새로운 챕터로 나아가는 존 시나의 여정,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그의 결말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의 역할에는 항상 '진정성'이 숨어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지 출처 : AI 및 아래 사이트

https://rollingstonephilippines.com/culture/sports/wwe-john-cena-is-bad-now-and-wrestling-is-more-exciting-than-ever/




참고 자료 :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global-trends/wwe-elimination-camber-2025-john-cena-ties-record-then-delivers-his-biggest-betrayal-yet-match-highlights/articleshow/118658003.cms?from=mdr#google_vignette

https://blog.naver.com/kshabsolute1/223118370756

https://en.wikipedia.org/wiki/John_Cena

https://namu.wiki/w/%EC%A1%B4%20%EC%8B%9C%EB%82%98

https://www.insight.co.kr/news/139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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