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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Jun 14. 2023

나는 양극성장애 환자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날들의 시작

'양극성 장애'는 파도에 비유되고는 한다. 높았다가 낮았다가, 세차게 때렸다가 잔잔하게 일렁이다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파도와 같은 양극성 장애는 그 어떤 병보다 스스로를 지치게 한다.


3년 전 나는 무너졌다. 일도, 인간관계도, 가족도.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였다. 마치 잘 쌓고 있는 줄 알았던 인생의 도미노 블록이 실은 다 넘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매일 집안에 처박혀서 끝도 없이 무기력하게 잠만 잤다. 그러다 새벽이면 잠에서 깼고, ‘나는 불행하다’를 되뇌며 울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던 몇 달이 지났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진료를 앞두고 이름이 불리기까지의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다리는 덜덜 떨리고, 손에는 땀이 찼다. 그 사이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다른 환자들을 보니 괜히 불안해진 마음에 평소보다 가슴이 더 빠르게 뛰었다. 그런 내게 설문지를 작성하라며 몇 가지 종이를 쥐여줬다. 그 여러 장의 설문지 속 질문들로 나의 상태를 설명해야 했다.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어떤 큰 사건이 있으셨나요?”     


첫 상담하던 날의 공기와 분위기가 생생하다. 진료실의 공기는 냉랭했다. 이것저것 질문하는 처음 본 의사는 마치 AI같이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그런 의사 앞에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심지어 불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 같던 몇 분이 흘렀을까. 병명을 진단받았다.               

“우울증입니다.”                


‘하. 우울증이라니.’ 그저 우울하기만 했을 때와 ‘우울증’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을 때는 기분이 달랐다. 마치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주일 치 약을 받고 나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병원을 내원하며 열심히 치료받기 시작했다. 약물치료와 상담 모두 병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매일 과호흡에 시달려 응급실에 들락날락했고, 밤이면 극심한 불면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을 ‘우울증 환자’로 살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는데 자꾸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마치 노래 속 아이돌이 된 것처럼 몸과 발이 들썩거렸다. 기분이 들뜬 건지,  내 몸이 ‘붕’하고 들뜬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었다.   

  

 ‘뭐지?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진 건가?’     


하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해져 갔다. 하루에 3시간씩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종일 집안을 서성이며 청소를 했고, 그렇게 이틀 밤, 사흘 밤을 새웠는데도 전혀 피곤하지도, 잠이 오지도 않았다. 또 이상하리만큼 말이 많아졌다. 대화할 상대를 찾기 위해 자꾸만 연락처를 들여다봤다. 누군가와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몸속의 에너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확실히 우울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와 달라진 나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며칠 뒤 주치의 선생님에게 이 모든 증상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한숨이 길어지는 만큼의 정적이 흘렀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과거를 묻기 시작했다. 혹시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지 혹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가족이 있는지 과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에 기억을 더듬어 가며 답을 했다. 그리고 고민을 거듭하던 주치의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양극성 장애인 것 같네요.”          


“네? 양극성장애요?”          


우울증이라고 할 때도 비참한 기분이었는데, 양극성 장애라니. 이것은 다른 말로 조울증이다. 첫 진료 때 양극성 장애를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우울증의 증세로 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2년이 흐를 때까지도 양극성 장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양극성 장애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고 하니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병이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되었다.


이제는 지독한 우울함과 무기력도 모자라 제멋대로 날뛰는 기분을 다독이며 살아가야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나의 평범하지 않은 날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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