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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Aug 10. 2023

차라리 그냥 막살아버릴래

자해와 술로 지새우던 지난밤의 기억

한동안 나는 막살아버릴 작정이었다. 하지 않던 것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위험한 행동을 반복하며 나를 위태롭게 만들고 싶었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매일 불안하고, 금방이라도 저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나에게 닥친 모든 상황이 싫고, 모든 것에 화가 나고, 이런 나조차 지겨워질 때쯤 마음을 먹었다. 나를 망가트려야겠다고. 그즈음 자주 자해를 했다. 침대맡에는 항상 커터칼을 놔뒀다. 잠자리에 눕기 전이면 자해충동이 심해졌다. 자꾸만 손목에 상처를 냈다. 내가 자해라니. 몇 년 전만 해도 입에조차 담지 않았던, 아니 담고 싶지도 않았던 그 슬프고 아픈 단어가 지금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서 자해만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가장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를 내면 흉만 남을 뿐, 결국 죽는 건 아니잖아.' 몇 번의 반복되는 자해보다는 한 번의 완벽한 죽음이 나을 거라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몇 번의 자해를 스스럼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온몸이 차가웠고, 금세 뜨거워졌다. 그러다 또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시야가 흐려진 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숨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그렇게 한 손에는 커터 칼, 또 다른 한 손은 팔을 걷어붙이고 손목을 긋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같은 자리를 한 번 더, 그렇게 연약한 피부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고 몇 초가 흐르자 점점 그 부위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베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 빨갛게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인지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서러워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다. 그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 무엇도 참을 수 없는 날이었다.


자해를 하는 것은 분노와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그것은 곧 꽤 오랜 시간 해방감으로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자해를 하고 난 뒤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흉터가 물에 닿으면 시리고, 옷깃에 스치면 벌레가 기어가듯 가려워질 때는 그날 느꼈던 감정의 해방감이 떠올라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또다시 자해를 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흐릿하게 얼룩처럼 남아있다. 상처가 깊지 않아 큰 흉터가 남지는 않았지만 그 부위가 거뭇거뭇하여 밉게 되었다. 작은 흉터에도 민감했던 내가 오른쪽 손목에 얼룩진 흉터를 스스로 남겼다. 차라리 막살기로 다짐했던 그날의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자해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많이는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하지만 꾸준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릴 만큼 무섭도록 매일밤 술을 먹었고, 그 어지럽고 알딸딸한 기분에 취한 채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술이 잠시나마 당장의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 같았다. 기억은 흐릿하고, 어지러운 몸만 남아있었다. 다음날이면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나에게는 꽤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아빠는 술을 자주 마셨다. 아니 내 기억 속에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늘 아빠 곁에서 나던 술냄새. 어린 마음에도 그 술 냄새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매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빠가 그 술병에 남은 술을 빨리 다 마시고 잠들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 수많은 밤은 왜 그렇게 길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침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어쩐지 내 모습이 그때 아빠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 어린 날의 트라우마로 남은 그 모진 날들을 닮아가는 건 정말 나를 놓아버리는 일 같았다. 막살아버리기로, 이렇게 망가트리기로 다짐해 놓고 처음으로 겁이 났다. 그리고 그날 마시던 술병의 남은 술을 싱크대에 다 부어버렸다.


지난 날 보다 지금은 꽤 안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늘 자해충동이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지만 아직까지는 잘 참고 있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냥 막살아 버릴 작정으로 살았던 그 하루하루가 어쩌면 죽기보다 힘들어서 나를 어떤 식으로든 괴롭히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또 언제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가 다시 돌고, 또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커터칼이 침대맡에 놓여있고, 집에는 병뚜껑을 열지 않은 술병이 남아있다. 평생을 비흡연자로 살아온 내가 담배도 피우고 싶고, 술을 진탕 먹고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싶고,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모드로 살고 싶은 날이 허다하다. 하지만 참고 있다. 아니 어쩌면 겁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망가져버릴 나의 모습이. 그 어색하고 낯설 내가 두려워서 막살아버릴 하루를 매일 미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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