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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Aug 02. 2023

우울증이 오래될수록

병에 걸린 것인가 아님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인 건가

우울증을 오래 앓다 보면 착각을 하게 된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불안에 떠는 내가 사실 병 때문이 아니라 원래 나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낫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게 원래 나라서 계속 이 상태가 아닌 걸까 하는 착각.

우울증에 걸려서가 아니라 원래 나약하고, 무기력해서 희망도 미래도 없는 거라는 착각. 우울이 나고, 내가 우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


오래된 우울은 무섭다. 우울한 감정자체를 보통의 상태로 만든다. 그러다 우울한 상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오히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예민해진다. 우울할 때는 고통스럽고, 힘들어했다가 조금이나마 평온할 때는 '왜 평온함이 이토록 불안한 거지'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미 오래된 우울증에 길들여져 버린 것 같다.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안정된 상태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사라지고, 분노와 슬픔과 불행만 남게 된다. 그것이 내 감정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처음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을 때가 생각난다. 세 번의 도전 끝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는지. 믿기지 않아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그때 나는 충분히 기뻐하고, 좋아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몰려왔고, 가슴이 빠르게 뛰면서 멀미하듯 속이 울렁거려 어지러웠다. 몸과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물었다. 몸으로 느껴지는 이 불쾌한 감정이 당황스럽다고. 좋은 일이 생겼는데 왜 이러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은 '기분이 좋은 감정조차 스트레스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했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이제 작은 행복조차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싶어서 기쁜 날, 오히려 한없이 우울했다.


우울증을 오래 앓으면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기분을 느낀다. 어쩌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기분이 정말 좋은 건지,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 건지, 이전에 나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기분이 조금이라도 들뜨면 조증이 올까 무섭고, 기분이 한없이 지하로 꺼지면 깊은 우울감에 죽음의 충동이 피어오를까 봐 무섭다. 어쩌면 딱 적당히 우울한 지금이 내겐 가장 안전하고, 버틸 만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나을 수 있을까.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묻는다.


“저 괜찮아질까요? 나아질까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내게 '지금 잘하고 있으니 조금씩 나아질 거다', '한 번에 모든 게 달라질 수는 없어도 천천히 가보자' 말하신다. 그러면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은 채 하루를 애써 버틴다.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한번 이 병에 걸리면 전에 없던 것처럼 말끔하게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원래의 나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병과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우울했던 날들보다도 더 오래 우울과, 무기력과 불안정한 감정을 매 순간 다독이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울증이 오래될수록 작은 행복조차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병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건지 헷갈려 매일 밤 괴롭도록 고민하는 나에게. 빨리 나아야 한다고, 달라져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나을 거라는 작은 기대와 흐릿한 희망으로 애써 살아가는 나를, 나조차도 몰아세우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우울했던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길어질 우울의 날들이 오늘보다 조금은 나아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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