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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Nov 28. 2022

최초의 퍼스널컬러

우리 집은 부잣집이다.

딸이 많은 딸 부잣집. 아들을 바라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넷째 딸로 태어났고 다섯째 딸인 동생이 태어난 후 부모님은 도전을 멈추셨다.

언니가 임신했을 때 엄마는 부모인 언니보다도 아기의 성별을 궁금해하셨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시댁 어른들은 아들을 바랄 거라고도 하셨다. 내가 보기엔 언니가 아들을 낳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엄마인 것 같았는데.


산부인과에 검진을 가는 날이면 엄마는 언니에게 여러 번 당부하셨다.

“물어봐. 알겠지? 딸인지 아들인지 꼭 물어봐.”

“지난번에도 물어봤는데 의사가 안 가르쳐 줘요.”

엄마는 그 의사가 참 야박하게 군다고 불만이셨다.

아기의 성별을 알려 주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대개는 “아기가 아빠를 닮았네요.”같은 말로 힌트를 주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놓고 묻지 말고 돌려서 잘 물어봐. 알았지?”


언니가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오자 결국 다음 검진 날에 엄마가 따라나섰다. 언니는 집에 돌아와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엄마와 의사의 대화를 전해 주었다.


엄 마 : 저기, 아기 옷을 좀 사야 하는데 하늘색을 사는 게 좋을까요? 분홍색을 사는 게 좋을까요?

의 사 : 흰색 사세요. 흰색.

엄 마 :  …

엄마의 완패다. 엄마의 전략은 냉정한 그 의사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이야기하다가 다른 나라에서는 아기의 성별을 알려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다른 나라의 할머니였다면 손주의 성별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셨을 것이다. 




지금도 흰색 옷이 잘 어울리는 그 조카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남자’ 대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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