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몸이 붙은 것처럼 누워 있다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저께 유튜브에서 ‘구글 타이머’라는 걸 보고 갖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드디어 왔다. 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집어 왔다. 현관 서랍장 위에 있는 칼을 사용해서 상자를 개봉하고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내서 뽁뽁이 비닐을 제거했다. 택배 도착 알림 메시지를 읽고 구글 타이머를 손에 쥐기까지 몇 초가 안 걸린 것 같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재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나. 굳이 타이머를 안 사도 잘 살 것 같은데.’
‘-자마자’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문법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에 빛의 속도로 반응한다면 그만큼 그것을 좋아하고 기다렸다는 의미도 된다. 예를 들면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뜯어본다든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 밖으로 나간다든가 하는 경우다.
‘-자마자’를 배운 날 학생이 숙제에 이런 문장을 썼다.
문자가 오자마자 답장을 하면 한가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금 있다가 답장을 해요.
정말 이 문법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쓴 명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학생이었는데 혹시 상대가 이성일 때 적용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모든 사람에게 다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을 때, 반갑고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는 연락이 오자마자 답장하지 말고 잠깐 여유를 부려 보자.
두 번째 택배 도착 알림 메시지가 왔다. 설마 책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책이었다. 오늘 오전 9시쯤 주문한 것 같은데 3시에 도착하다니. 한국의 택배 속도는 정말 놀랍다.
작년에 가입한 독서 모임이 있다. 최근에 ‘돈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Money)’이라는 책 모임 공지가 올라왔는데 금방 마감이 되어 버렸다.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 증권사 근무자라서 반응이 더욱 뜨거웠던 것 같다.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마감되는 걸 보고 요즘 모두의 눈과 귀가 돈을 향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에 빈자리가 났길래 참석하겠다는 댓글을 달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배달된 책은 아직 펼쳐 보지 않았다. 오자마자 읽으면 한가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직 안 읽은 것은 아니다. 평소에 잘 안 읽는 분야의 책도 접해 보려고 독서 모임에 가입한 것인데 역시 택배를 뜯는 속도부터 다르고 손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책이 꽤 두꺼운 걸 보니까 돈의 심리는 상당히 복잡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