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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May 15. 2023

아침부터 먹어도 되는 것

나의 장기근속의 비결은 아침밥이다.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면 9시부터 1시까지 쫄쫄 굶고 공복 상태로 4시간을 떠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고 아침밥의 힘으로 학교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기억하며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서 교사의 상태를 양호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어학당에 오는 길에 먹을 걸 사 오는 학생들이 많다.

"그거 아침이에요?"

수업 전에 빵을 오물오물 먹는 학생이 귀여워서 가끔씩 말을 붙여 봤다.

아침부터 빵을 먹어서 어쩌나 생각다가 원래 빵 먹다가 온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기 나라에서 주식으로 늘 빵을 먹다가 온 서양 학생인데 나도 모르게 밥 말고 빵을 먹는 걸 안쓰러워하고 말았다.

동료 선생님은 학생들 입장에서 아침부터 김밥 같은 걸 집어넣는 우리가 신기할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렇다.


아침부터 뭘 먹어도 되고 안 되고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겠지만 학생들이 아침밥으로 사 오는 음식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크래미'.

학생이 책상에 앉아 바스락거리는 크래미 비닐을 뜯는 모습을 보며 '저건 안주인데'라고 생각했다. 맥주 없이 크래미만 단품으로 먹은 적이 있었던가. 있다고 해도 아침 시간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리고 '치킨'.

임대료 비싼 동네 홍대는 몇 달 지나면 임대료를 못 버티고 가게가 바뀐다. 어학당 옆 건물 1층이 편의점이었을 때 편의점 조각 치킨이 학생들의 아침 식사였다. 아침부터 치킨 냄새가 솔솔 나는 교실서 치킨을 야무지게 뜯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젊어서 소화력이 좋은 건가?'

지만 나의 젊은 날을 되돌아보면 한창 먹을 때도 '모닝 치킨'은 무리였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오늘 아침 전철에서 바나나와 요거트가 든 종이 가방이 보여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들 아침을 먹었을까?'


내 기준의 '좋은' 아침은 따뜻한 국이 있는 한식 식단이다. 챙겨 먹기는 힘들지만 먹으면 속이 편하고 오전 시간에 약간 온화하고 친절해지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에게 최고의 아침은 커피와 토스트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향긋한 바나나, 누군가에게는 짭조름한 크래미.

뭐든 상관없을 듯하다. 내일도 각자가 원하는 아침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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