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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Nov 24. 2024

산타할아버지


나는 11살 때까지 크리스마스가 오면 산타할아버지가 온다고 믿었다.

 아마 내가 11살 때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께 받아서 믿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던 것은 ‘울면 안 돼’ 동요 때문이었다. 


동요의 가사에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라는 것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늘 울보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눈물이 많다. 그랬기에 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25일까지 근 1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내게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납득했다. 어린 나이에도 합리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도 8살 무렵 사라졌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없어. 엄마나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야.


진실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매번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고 만나기를 소망했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지 부모님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들었던 감정은 왜일까? 왜 부모님은 내게 산타할아버지가 되어주지 않으셨을까? 였다. 

머릿속에는 가족앨범 속 언니의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에게 안겨 선물을 받고 웃고 있는 사진이 생각났다. 사진 속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었구나를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께 묻지 않았다. 그저 나는 묻지 않고 믿지 않았다. 

부모님이 산타할아버지를 하지 않은 것은 나를 신경 쓰지 않아서였음을 믿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1살이 될 때까지 여전히 산타할아버지가 있음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11살 때까지 큰 양말을 접어 방에 걸어두거나,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적어 트리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산산이 부서 주었다.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산타할아버지 타령이야, 산타는 없어.” 엄마의 말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외면했다. “아니, 산타할아버지는 분명히 있어.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게임 cd를 받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엄마는 깔깔거리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12살이 되던 크리스마스이브날, 

나의 이 노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부질없음을 말이다.    

 


8살 어린 남동생의 산타할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게 어떤 선물이 동생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지 물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대형마트에 갔고 고심하여 뽀로로 장난감을 골랐다. 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동생은 그다음 날 아침 배게 위에 놓아진 뽀로로 장난감을 보고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12살이 될 때까지 오지 않았던 산타할아버지는 내 동생 4살 때 찾아왔다.     




산타할아버지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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