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터널 속을
화롱빛 하나 손에 들고
환호가 스며드는 침묵 속을
묵묵히 단죄하며 걸어간다
비어버린 그림자처럼
나아갈수록 사라지는 존재의 흔적
남겨진 무연의 공간,
날아오르는 심연의 나비 한 마리
휘몰아치는 칼날 같은 바람에
살결은 얼음처럼 파랗게 익어가고
뜨거운 냉소는
바위 같은 질문과 연민을 남긴다
괴로움과 후회를 집어삼킨
괴물과 벌레의 무덤 속,
영물은 하강하는 승리에 취해
깨진 생의 조각 위에 서서
신에 대한 믿음을 토해낸다
반사되는 스펙트럼 위로
잡힐 듯 사라지는 설움과
남겨진 발자국은
붉게 물든 깊은 상흔이 된다
넝쿨처럼 엉켜버린 미련은
도망쳐버린 사랑이고,
운명 같던 인연은 해진 붉은 실
묶고자 하는 말은 혀끝의 무용수가 되어
돌아오는 건, 텅 빈 박수소리와 비틀어진 얼굴
폭군처럼 파괴는 거침없이
추악한 내면으로 다가와 마주하고
가면을 쓴 선함은
의심의 꽃만 피워낸다
겁 없이 달려오는 검은 불꽃은
필연처럼 나를 집어삼키고
끝없이 어두운 터널 속으로
희미한 온기마저 짓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