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도
갯벌 장어의 꿈
생일을 맞아 여자친구가 호기롭게 장어를 사주겠다고 해서 주말에 강화도로 갯벌 장어를 먹으러 갔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장어를 무척 좋아한다. 장어 초밥도 덮밥도 탕도, 소금구이도 양념구이도, 오니기리도 장어 튀김도, 그 기다란 생김새도 명칭도 모두 좋아한다. 모둠 특초밥을 시키면 장어가 몇 피스 인지 구성부터 확인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어종을 파악해서, 실례가 안된다면, 바꿔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약 한두달에 한번 꼴로 기름진 장어 덮밥이 무척 먹고 싶어진다.
그렇게나 장어를 좋아하지만 역시 자주 먹을 수는 없다. 장어는 기본적으로 비싼 어종이니까. 더군다나 ‘갯벌 장어’라는 것은 정말 마음 먹지 않으면 쉽게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비싸다고 여겨지는 바다 장어보다도 비싸다. 그런 슬픈 이유로 나는 평소에 장어가 먹고 싶어지면 덮밥집이나 초밥집을 기웃기웃 검색해보거나, 빼빼 마른 아나고나 붕장어를 사다가 쓸쓸하게 먹곤한다.
그런데 갯벌 장어와 바다 장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바다와 뭍의 중간지대인 갯벌에 산다는 것은 더 탁월한 적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갯벌 장어가 바다 장어보다 원기 회복에 더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단순히 포획이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먹어본 바에 따르면 바다 장어나 갯벌 장어는 서로 맛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소금과 생강이 잘 어울리는 예의 그 장어 맛이다. 모든 종류를 늘어 놓고 먹으면서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갯벌 장어라고 해서 특출나게 향이 좋거나 식감이 탱글탱글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먹으면서 속으로는 ‘다음부터는 갯벌장어 한번이 아니라 그냥 속편하게 민물 장어를 두번 먹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그렇지만 당분간 장어는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생일이라는 것은 참 좋군요.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어쩌면 기다란 형태의 어종은 모조리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갈치도 곰치도 예전부터 무척 좋아했다. 농장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를 보면서 ‘거 참 맛있겠네’ 하고 군침을 흘리는 일은 없지만, 아쿠아리움에 놀러가서 좁은 구멍 속에 숨어 있는 뱀장어류를 보고 있으면 이 물고기는 과연 어떤 맛일까. 하고 문득 궁금해져서 입맛을 다시게 된다.
그건 그렇고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찾아보다가 '대왕 곰치'가 무려 상어를 잡아먹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곰치가 맹렬하게 옆구리를 물고 구멍, 보다는 동굴, 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제아무리 근력 좋고 민첩한 상어라도 속수 무책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커다란 '대왕 곰치'의 최대 신장은 무려 3미터, 체중은 30킬로그램에 육박한다고 한다. 유유히 스쿠버 다이브를 하다가 바다 속에서 대왕 곰치라도 마주친다면, 아무래도 아쿠아리움에서처럼 입맛을 다시면서 거만하게 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정도 크기의 곰치라면 오히려 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겠지.
영국에서 장어는 전통적으로 혐오 어종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비린내도 심하고 살도 물컹물컹해서 최근까지는 거의 상품성이 없는 어종이었다고. 그래서 돈이 없는 하층민들이 싼 값에 사서 먹거나, 오랜 기간 상하지 않는 식량이 필요한 선원들이 보관에 용이한 젤리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장어 젤리는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음식 사진을 보니 장어 기름인지 젤라틴인지가 회색 빛깔의 젤리로 만들어져 유리병에 들어있다. 마치 배기 가스를 뭉쳐서 젤리로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할 정도로 끔찍스러운 모습이다. 아무리 장어를 좋아하는 나라지만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장어하니까 생각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이 만들고 불렀던 ’민물 장어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생전에 그는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다’ 라고 했고, 실제로 그의 추모 콘서트 부제는 ‘민물장어의 꿈’이 되었다. 이 노래에 대해서는 창작자 본인이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한 공식적인 해설이 있다.
노래에서 ‘민물 장어’는 아무래도 끊임없는 자아의 확장을 겪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살아온 익숙하고 일상적인 현재의 상황(민물)에서 벗어나, 좁은 구멍을 뚫고 바다라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지금껏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바다로 나가는 구멍은 매우 좁디 좁아서 심지어는 그간 소중히 쌓아온 자신의 자아까지 버려야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무렵 신해철도 같은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는 영국의 런던에서 체류하며 끝없는 고뇌과 사무치는 고독 속에 빠져 있었다. 음악을 위해서 자신이 고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들. 자신이 버리고 온 모든 안온함과 명예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해철이라는 자신의 자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장어가 가장 맛없게 소비되는 나라에서 한껏 남루하고 처연한 마음을 품고 이 불후의 노래를 작곡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민물 장어라고 생각했다. 바다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단 한 번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만 있다면 죽어버려도 괜찮다. 라는 터프한 마음을 가진 민물 장어. 그는 그것이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며, 음악가로서의 존재 의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민물 장어는 결국 바다의 장어가 되어 멋지게 살아남는 데 성공했을까. ‘민물장어의 꿈’을 가만히 듣고 또 듣고 있을 때면, 아무래도 민물장어가 결국 바다에 당도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거라는 깊은 예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서라면 ’미련 없이 긴 여행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하는 민물장어의 꿈은, 결국 드넓은 바다로 채 나가기 전에 갯벌에서 끝나버린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나는 갯벌 장어가 그 무엇보다 비싼 장어라는 데에 더이상 아무런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