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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19. 2023

더 세컨드 슬램덩크

더 세컨드 슬램덩크

     

  슬램덩크가 리마스터링된 걸 보면 세상은 보기보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화방을 들락거리던 소위 ‘만화책 세대’의 사람들에게 슬램덩크의 존재는 그야말로 전설. 거기다 단순 재탕식의 리마스터링이 아니라 가슴 뜨거워지는 송태섭의 가족사가 더해지니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슬램덩크’라는 단어만으로도 농구에 일자무식인 나같이 평범한 남자도 조금씩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만화책 슬램덩크를 세 차례 읽었다. 두 번 본 만화는 많이 있었지만, 내가 세 번이나 읽은 것은 굳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모든 훌륭한 예술품이 그렇듯이 슬램덩크는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발견과 시사점을 몇 가지씩 내어준다. 그렇기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면서 만화의 세부 내용이나 표현법을 일일이 비교해가며 보는 것은 나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슬램덩크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제쳐두더라도 영화는 꽤나 좋았다. 전반적으로 플래시백이 잦고 조금 지지부진한 면은 있지만, 관객과 슬램덩크 사이에는 20 여년이 넘는 커다란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 정도의 품은 들여야 비로소 납득되는 것도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황했던 것은 어쩐지 만화책의 첫머리에 강백호가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하는 부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만화로 치면 1권 부분의 내용이 전연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집에 돌아와 눈을 감고 끙끙거려봐도 기억에서 건져 올라오는 것들은 어쩐지 중반부 내용일 뿐이다. 세 번이나 읽었는데 어째서 그런 걸까.     


  그러다가 문득 ‘오호,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추측이 맞다면, 내가 슬램덩크 1권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역사가 하나 있다. 어쩌면 그것을 양력 속에서 ‘사라진 10일’처럼 ‘사라진 1권’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니, 손수건이라도 하나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는 둘째, 이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물론 둘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두 살 터울이니 어떻게 비벼볼 수도 없는 명확한 둘째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첫째가 된다거나 셋째가 되는 그런 일은 없다. 형제라는 뜻은 크면서 많은 것들을 함께해야 한다는 소리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게임을 한다. 같은 날 목욕탕에 가고 같은 영화를 본다. 그리고 당연히 같은 책을 본다. 그렇지만 같이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시에 한다는 말은 아니다. ‘둘째’라는 것은 무언가의 ‘두번째’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컴퓨터 게임도, 먹는 것도, 책도 모두 두번째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형제가 어떤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빌려 와서 읽기 시작한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2권을 먼저 집어들고 읽기 시작해야만 했다. 마치 1권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렇다고 해서 2권을 보고 1권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만약 2권을 읽고 1권으로 돌아가면 나는 결국 3권을 아주 나중에 읽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해서 나에게 슬램덩크는, 아니 그뿐 아니라 드래곤볼과 해리포터나 원피스와 같은 시리즈는 모두 2권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강백호는 벌써 농구에 푹 빠져버렸고, 해리는 이미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난 뒤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내용을 비교하며 무언가 끊어진 듯 공백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은 망각이라기보다 기억의 공백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아, 역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 라고 하기엔, 말하고 나니 그정도까지는 아니네요. 이렇게 공백을 일상의 당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어린 시절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가진 상상력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이야기의 중반부를 통해, 앞서 발생한 사건들을 추측하고, 전반적인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끼워 맞추는 과정을 거치며 길러져 왔는지도 모른다. 마치 피스가 턱없이 부족한 퍼즐을 보며 전체적인 그림을 추측해보는 것과 같다. 당장에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비록 그것이 무척 빈약한 정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가설을 설정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검증해 나가는 사고방식과도 비슷하다. 어쨌건 인생에서 필요한 재료들이 우리에게 언제나 완벽하게 갖춰진 경우는 좀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가 계란 한 알과 두부 반 모 그리고 체다 치즈 뿐이라면 나는 그것으로 어찌어찌 먹을만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문 앞에 소갈비찜을 두고 가는 일은 없다. 내가 살아가며 배운 것은 그런 것이다. 약소하나마 내가 가진 것들을 파악하고 최대한 솜씨를 발휘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나는 무언가 부재되는 일에 익숙하다. 하나의 공백이 있다면 그것을 멋대로 추측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편이다. 물론 부재된 상태라는 것은 엄청나게 불편하다. 속 시원하게 해명된 것은 없고, 일의 앞뒤가 논리적으로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 불명확한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거기에 익숙해질 수는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분명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영원히 부재된 정보로서 남겨진다. 그렇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미립난 일이다. 나는 그것을 평생의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다. 만약 어떤 건물이 1층이 아니라 2층부터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2층부터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어딘가에는 2층부터 시작돼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 1층부터 시작하지 않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치에 맞지 않고 정보가 부재된 상황은 무척 당혹스럽고 짜증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2층부터 시작됐어야만 하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 부재된 정보를 채워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또다른 정보의 부재와 더 깊은 공백을 가져오는 결과만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어째서 2층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보다는 ‘2층부터 시작한다’라는 것을 사실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삶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어떤 공백이 만족스럽게 매워지는 일도 없다.     


  이렇게 나는 전국의 모든 둘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우리들은 공백의 바다를 헤엄치며 그 안에서 손에 잡힐만한 구체적인 것들을 건져내며 살아온 것이다. 물론 첫째는 첫째 나름의 고충과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나에게는 완전하게 부재된 정보 중 하나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첫째의 비애나 고뇌 같은 것은 첫째인 사람 쪽에서 알아서 소명하면 된다. 나는 둘째니까, 둘째 이야기만 한다(할 수 있다). 우리는 옷과 신발을 물려받아 입고, 모든 게임을 구경부터 시작했으며, 수많은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램덩크를 2권부터 봐야만 했다. 그런 우리들에게 슬램덩크의 리마스터링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는 부재된 정보의 충족이 있다. 멋지게 추가된 송태섭의, 신기하게도 그도 둘째다,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아픔을 위로하는 듯 그간의 부재에 대한 소소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나와 같은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은 20여년의 기다림 끝에 작고 소중한 공백을 올바른 형태의 정보로 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 라는 것보다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라는 것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닐까. 마지막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제가 형보다 먼저 봤다고 하는군요.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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