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미한 소리 Apr 19. 2024

냉장고 속 음식이 상할 수 있는 것처럼 기억도 상한다.

 여러분은 기억을 잘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못하는 편입니까? 가장 어렸을 적 기억은 무엇입니까?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남은 기억은 좋은 기억인가요? 아니면 힘들었던 기억인가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좋은 기억이 많나요? 아니면 생각하면 울컥하거나 떨리고 힘든 기억이 더 많나요? 기억의 방식은 어떤가요? 작은 것 하나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나요? 아니면 느낌이나 이미지로 전체를 기억하나요? 그림이나 사진처럼 장면을 찍어서? 영화나 영상처럼? 아니면 글처럼? 기억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억”을 검색해 봤습니다.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정보·통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사전을 보다가 문득 기억이 냉장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냉장고에 음식과 재료를 저장하고 간직했다가 필요한 순간에 도로 꺼내서 사용하는 것처럼, 기억도 우리 의식과 마음에 무언가를 저장하고 간직하다가 나중에 도로 꺼내서 사용하는 점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을 냉장고와 함께 생각하면, 몇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무리 냉장고라도 보관하는 음식과 재료를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상하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래전 추억을 이야기를 할 때면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같은 추억을 이야기하는데 분위기와 내용이 다르다면, 내 기억이 상했거나 상대방의 기억이 상했거나, 아니면 둘 다 상했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성능과 상관없이 음식과 재료를 오래 두면 유통기한이 지나서 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기억력과 노력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난 기억은 얼마든지 왜곡되고 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집중해서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기억이 틀리고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일이 더 필요합니다. 그다음 냉장고 정리를 정하면서 상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는 것처럼, 우리 기억도 정리하면 됩니다. 각자의 마음에 상한 기억이 있는지, 생각에 유통기한이 지난 기억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 다 버립시다.


 다음으로 냉장고를 통해서 기억의 무게 중심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냉장고의 최종 목적은 음식과 재료의 보관이 아닙니다. 보관된 음식과 재료를 꺼내 다시 요리해서 먹는 일입니다. 기억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잘 보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기억 속 과거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서 그때의 즐거움 혹은 불편함을 느끼는 일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지금 여기로 가져와서 현재의 삶에 활력을 만들고 도움을 얻는 일입니다. 따라서 기억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기억이 나쁜 기억이냐? 좋은 기억이냐? 생생하냐? 이것보다 기억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음식을 만드냐가 더 중요합니다. 냉장고 속 재료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서 잘 먹는 것처럼, 기억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재료로 사용해야 합니다. 과거의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기억으로 현재의 무엇을 요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기억으로 어떤 요리를 하십니까?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쓴 음식을 만드십니까? 불편한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튼튼하게 만드는 건강한 음식을 만드십니까?  

 

 며칠 전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 난지 10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10년이나 지나서 기억이 흐릿해진 이들도 있고,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생한 이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삶과 생각 속에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천차만별 일 수 있습니다. 다만 기억을 꺼내 지금 여기서 만드는 일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 더 안전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일!



매거진의 이전글 양재천은 벚꽃 없이도 충분하다. 우리도 그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