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다 아신다고요? 사람과 인구가 아니라 나무와 숲 이야기입니다. 지금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중에는 1970~80년대에 대규모로 심긴 나무들이 많은데, 사람으로 치면 40~50세가 된 것이고, 2050년이 되면 전체 산림면적의 76.2%가 노령기에 접어든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요? 나무는 오래될수록 멋지고 귀하지 않냐고요? 맞습니다. 몇 백 년 된 나무는 경이롭고 멋집니다. 다만 노령기에 접어든 나무의 탄소흡수량이 줄어드는 점이 문제입니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탄소입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거나, 배출된 탄소를 흡수해야 합니다. 나무가 바로 이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노령화가 되면 흡수해서 처리하는 탄소량이 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오래된 나무를 베고 새로운 나무를 심으면 되지 않냐고요? 두 가지 걸림돌이 있는데, 먼저는 나무가 자랄 때까지 20~30년의 공백이 생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숲의 역할이 탄소흡수뿐만 아니라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숲의 일부인 노령화된 나무 역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나무를 더 많이 심어서 새로운 숲을 이루고, 새로운 공원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입니다. 숲과 나무는 점점 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이나 다른 무언가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입니다.(참고: 주간경향 1575호)
나무와 숲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무와 숲이 기후위기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다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숲이 사라지고 나무가 베어지는 일은 막지 못할까요? 새로 나무를 심고 숲과 공원을 만들지 않을까요? 나무가 베어질 때 생기는 문제가 즉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나중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져 생기는 문제의 피해자가 불특정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나무와 숲을 지키는 일은 지금 내가 먹고사는 일에 그리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반면에 나무를 베어서 얻는 이익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힘이 막강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면 나무와 숲을 지키는 일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이라서 내 노력이 의미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몇몇 사람이 얻는 이익이 아니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이익이기에 더 열심히 실천해야 함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을 막을 수 없기에 뒤로 미룬 피해는 반드시 오늘이 되어 찾아올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으니까, 모두가 해야 합니다. 이것을 다 아는 우리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요?
가장 똑똑한 동물인 침팬지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 가리키는 곳을 보지 못하고 그저 손가락 끝만을 봅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 손가락이 아니라 가리키는 곳을 보고, 그곳으로 갑니다. 강아지가 침팬지보다 지능이 낮은데, 어떻게 침팬지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침팬지와 달리 강아지는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 땅, 바다, 구름, 바람, 모든 자연이 오늘 우리를 보면서 각자의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아가면 자연의 아픔이 있고, 더 앞으로 나아가면 생명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침팬지만큼 똑똑한 우리는 그저 자연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지 않나요? 강아지만큼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잠시 시간을 내어서 자연의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마음으로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