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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곡재 Mar 22. 2022

옥인아파트

4. 자연 속의 수영장

한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피서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산으로든 바다로든, 해외까지 맘대로 갈 수 있지만, 그 땐 너무도 달랐다. 해외여행은 1988년 올림픽 이후에야 가능했기에 그 전에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었다. 올림픽 이후에도 해외여행이 법적으로 가능했다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간혹 누구네가 강원도 바다에 갔었다더라, 누구네는 서해안 바다에 갔었다더라 하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옥인아파트에는 친환경적인 수영장이 있었다. 수성동 계곡을 막아 자연스럽게 웅덩이가 생겼는데 우리는 이곳을 수영장이라 불렀다. 가장 깊은 곳은 1미터 20센티 정도였고, 가장 낮은 곳은 무릎 정도의 깊이였다. 길이는 20미터 정도에 폭은 10미터 정도였으니 자연 수영장치고는 아주 훌륭했다. 서너살 꼬마부터 중딩까지는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수영장은 아파트를 지을 때부터였는지 짓고 나서 필요에 의해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이사왔을 때부터 었었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을 때 이미 설계에 포함되어 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영장의 구조는 이러했다. 기린교에서 수성동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계곡이 둘도 나뉜다. 왼쪽은 실개천이고 오른쪽이 주류이다. 주류인 오른쪽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다시 둘로 나뉘는데 역시 왼쪽은 실개천이고 오른쪽이 주류다. 바로 이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폭 10미터, 길이 20미터로 웅덩이를 만든 후 시멘트로 바닥과 벽을 마무리한,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친환경 인공 수영장인 셈이다. 


무더위가 사라지는 시간부터 다음해 무더위가 시작되기까지 산 위에서부터 물에 섞여 내려온 모래, 그 위에 떨어진 수북한 낙엽, 바람에 잘린 나뭇가지 등이 쌓이면 수영장은 찾아볼 수 없고 숲속의 빈터와 같은 훵한 모습이 된다. 다시 더위가 찾아올 때쯤이면 동네 아이들 모두 '저렇게 많이 쌓인 모래와 흙, 낙엽을 어떻게 치우지' 걱정하곤 했다. 당시 아파트에는 주민들을 위해 이런저런 힘든 일을 해주시는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다섯 분쯤 있었다. 수영장이 개장할 때 쯤이면 이 분들이 수영장에 가득했던 흙과 모래 등을 싹 치워 주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시원한 음료수와 막걸리를 대접하곤 했다. 그리고 때 맞춰 불어난 계곡의 맑고도 맑은 물이 그 빈자리를 메꾸면 피서라는 말이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멋진 수영장으로 탈바꿈했다.


작열하는 태양, 가파른 언덕은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땀에 절은 채 수영복으로 잽싸게 갈아입고 물속으로 직행하면 더위는 휙 사라지고 조금 후엔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여름방학 때는 하루종일 인왕산의 경치와 맑은 공기와 물을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물이 너무 차서 30분 이상 물놀이를 하는 건 몹시 강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추위가 몰려오고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입술이 보라빛으로 물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1동 뒤 치마바위에 올라 인왕산을 배에 깔고 누웠다가 인왕산을 등에 지고 누웠다가 하기를 반복하면서 뜨거운 바위에 몸을 지졌다. 


옥인아파트의 여름은 천국이었고,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는 추억이다. 하지만 이 천국에서도 치사한 일이 있었다. 옥인아파트 9개 동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수영장을 즐길 수 있었지만 아랫동네 아이들은 수영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아파트 아이들은 용케도 다른 동네 아이들을 금방 색출해서 나가라는 눈치를 주고, 그래도 나가지 않으면 관리소 아저씨들에게 일렀다. 그럼 아저씨는 바로 그 아이를 불러내 쫒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치사 빤스다! 하지만 그 때는 아파트의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무슨 특권인 양 행세했고, 아파트에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우리와 그들을 구분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불의를 보면 꾹 참고, 어른한테 이를 일이 있어도 잘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꼭 열에 한둘은 스스로 완장을 찬 보안관이 되어 마치 타동네 아이들을 색출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 것처럼 행세했다. 물론 나는 열에 일고여덟에 해당했지만, 나도 보안관 행세를 하는 아이를 맘속으로 지지했었음을 고백한다. 지금이라면 자연이 준 멋진 환경에서 누구라도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모두가 어렸다. 그래도 꼭 사과는 하고 싶다. 옥인아파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했던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내가 옥인아파트 수영장의 추억을 곱씹고 있을 때, 그들은 그때의 상처를 곱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 역시 반백이 되었겠지만, 반백으로 수성동 계곡을 다시 찾는다면 그 때 속상했던 마음을 계곡물에 깨끗이씻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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