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서안 Jun 22. 2023

가난의 무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자신의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에 대해 저마다 느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만약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웃에 매달 200만원의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는 사람이 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잘 사는 편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1천만원을 버는 사람 옆에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잘 사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감정은 주관적이지만, 소득 수을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존재한다.


 얼마 전에 중산층을 다룬 뉴스 기사를 읽었다. 연합뉴스에서 나온 것인데, "한국형 중산층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균등화 중위소득 75∼200% 사이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정의하였다. 중위소득 정도라면 합리적으로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512만원이었으며, 중위소득 75∼200%에 해당하는 소득 범위는 월 385만∼1천20만원이다. 또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간한 2022 중산층보고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산층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동산 자산 규모는 8억 4천만원으로, 실제 중산층 수준인 3억 9천만원보다 4억 5천만원 많았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1. 한국형 중산층은 특이하게도 소득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이 계층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2. 객관적으로 중산층에 해당하는 계층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 3. 그래서 중간 정도의 삶을 넘어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새삼 느끼지만 땅과 부동산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버지가 내 나이보다도 어린 소년이었을 때, 안의 가장은 할머니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할머니는 온전히 자식을 돌보는 데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일거리를 해야 했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자, 할머니는 아직 어리니 막내를 먼저 데려오고, 그 다음에 장남을 데려왔다. 둘째였던 아버지는 동생과 형이 차례차례 할머니 손을 잡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홀로 증조할머니 곁에 남았다. 한 어린 자식들을 떼어 놓고 멀리 타지로 공장에 일하러 가는 그 발길이 쉬이 떨어지기나 했을까. 당신은 눈 앞에 보이는 저 많고 많은 집 중에 어떻게 우리 다섯 식구 몸 뉘일 하나 없나, 그렇게도 서러웠다고 했다. 늦은 밤 공장 옥상에 올라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흘린 눈물이 옷소매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을까. 나는 세상에 그런 가난이 존재함을 안다. 입에서 입으로 옛날 이야기처럼 전해진 그 슬픔을 들었고 흉터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을 두고 "가난하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가난의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에. 아직도 그때 홀로 두고 온 둘째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할머니와 너무 일찍 철이 들어 엄마에게 어리광 피우는 법도 모르고 큰 소년을 알기 때문에. "부유하다"라고 쓰여진 카드를 뒤집는다고 해서 "가난하다"가 나오지 않는다. 부유하다의 부정은 단순히 부유하지 않다일 뿐이다. 이것은 가짜 가난이고 저것은 진짜 가난이다 따지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가난하다는 딱지를 붙이지 않고 그 무게를 알고 말으면 한다.


 지금 세 형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렸다. 나는 부족함 없이 지원 받고,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정에서 자라난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음에 학교를 졸업해서 내 집이 있고, 직업이 있으며,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진 어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진부한 스토리가 계속 팔리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