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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안 Apr 08. 2023

진부한 스토리가 계속 팔리는 이유

노트북을 살 때 사은품으로 PSSD가 같이 왔다. 그 전에는 원드라이브에 그동안 들은 수업 자료 같은 것들을 보관해놓고 있었는데, 원드라이브는 (한번 올려놓으면 다시 다운 받는 게) 너무 속도가 느리고 답답해서 그냥 자료를 옮겨버리기로 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교양 강의에서 과제로 냈던 대본을 발견했는데 내가 쓴 글인데도 다시 읽어보니 남의 것처럼 낯설었다. 그땐 나름 괜찮은 퀄리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



일단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주인공 감정선이 휙 바뀐다. 드라마였다면 차근차근 서사를 쌓을 시간이 충분했겠지만, 이건 과제인지라 영상 길이에 제한이 있어서 15분 안에 기-승-전-결을 완결시켜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사도 약간 작위적이지만, 교수님이 보는 과제인데 거기에 비속어를 쓸 순 없으니 그것도 역시...  그래도 교수님이 좋게 평가해 주셔서 A+ 이라는 성적을 받았다.



대본을 쓸 때, 정작 스토리는 한두 시간 만에 술술 써놓고는 제목 하나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했다. 후보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불안하고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를 선택한 이유는 보는 사람에 따라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 아니면 불안해서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 난 원래 애매모호한 걸 좋아하니까. 청춘, 꿈 같은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 많이 다뤄진 주제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진부한 클리셰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게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봤을테니 나중에 합평회를 할 때(조별과제) 다수의 공감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앞뒤로 인용 기호를 써서 강조해놓은 부분은 내가 이 시나리오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다. 오직 저 두 대사를 하고 싶어서 이 모든 장면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인생에도 모범답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다."는 그런 세태를 비판하고 싶어서,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는 그런 사회에서 작가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내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인생에도 모범답안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에요. 10대, 20대에 해야 할 게 정해져 있고, 그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은 낙오자 취급을 받아요. 그러니까 다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시점에 방향을 잃고 멈춰 서게 되는 거죠.



제목: 불안하고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


주제: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자아 찾기


기획의도: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한다. 세상이 이토록 냉혹하다. 이제 막 어른이 된 20대에게 세상은 잠깐의 방황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간식이나 나눠 먹으며 시시덕거리던 친구들은 어느새 옆구리에 토익 책, NCS 한 권 끼고 저마다 학원이며 스터디며 취준하기에 바쁘다. H도 그 중 한명이다. 다들 그러니까, 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시작한 공부에 H의 의지는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나가다 문득 멈춰 섰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지?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의 수많은 ‘H’들에게 얼마든지 고민해도 된다고, 그 방황의 시간이 모여 빛나는 내일이 될 거라고 위로하는 이야기이다.

<인물 소개>

H: 주인공. 사회복지학과.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글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다. 고등학교 연극부에서 작가를 맡았다.
B: H의 언니이자 J의 친구. 평범한 회사원이다. 동생의 공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C: 기계공학과. H와는 오래된 친구 사이이며, 고등학교 때 같은 연극부 소속이었다.
J: 영어영문학과. H와 C의 동아리 선배. H의 언니인 B와도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 사이.
조원 1
조원 2
기자: 유명한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



S#.1 학교 후문 (저녁/밖)



[BGM] 잔잔한 음악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학교 후문 (Long Shot)

화면 왼쪽에서 등장한 C가 통화를 하며 걸어가다 맞은편에서 오는 J와 B를 만나 인사를 한 뒤 잠깐 대화하고 지나간다. 화면에 “C, J, B”의 이름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잠시 후, 조원 1과 조원 2가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해서 대화하며 왼쪽으로 걸어간다. 같은 방식으로 “조원 1, 조원 2, 기자”의 이름.

마지막으로 가방을 멘 H가 화면 왼쪽에서 등장해서 휴대폰을 만지면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같은 방식으로 “H”의 이름.



S#.2 도서관 뒤편 (저녁/밖)



나뭇잎 사이로 도서관이 멀리 보인다.



H(NA):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 다른 것은 입고 있는 옷의 색깔뿐인 단조로운 인생을 살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공강 시간에는 토익 공부를 하고, 오후엔 스터디. 학점은 평범, 점수도 그럭저럭. 나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S#.3 H의 방 (밤/안)



H가 방에 들어와서 무거운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사람이 없는 집은 무척 조용하다.



H: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꺼내며) 어휴, 힘들다.



H는 침대에 누워 밀린 연락에 답장을 하다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뜨린다. H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떨어진 휴대폰 옆에 노트가 담긴 박스가 있다.



H: 이건 뭐지?



휴대폰과 박스를 꺼내자 그 안에 고등학교 연극부 대본이 들어있다. 표지에 있는 “작가 H”



H: (표지를 만지면서) 이게 여기 있었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H는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앉아서 대본을 천천히 넘겨본다. 어느 순간 미소를 짓고 있다.





S#.4 스터디룸 (낮/안)



스터디룸에 H와 C가 나란히 앉아있다. 맞은편에는 같은 조인 조원 1과 조원 2가 있다. 네 사람은 함께 모여 팀플을 하는 중이다.



H: (약간 망설이며 노트북을 보여준다) 음… 일단 이렇게 써 보긴 했는데요. 한번 봐주세요.

조원 1: 벌써 다 쓰셨어요? 한번 읽어볼게요.



조원들이 서로 “기획의도 좋다.” “그렇지?”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H가 쓴 대본을 읽는 동안 H는 C에게 손짓을 한다.



H: (속삭이며) 나 잘 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바꾸는 게 낫지 않아?

C: (눈은 노트북 화면에 고정한 채로, 타이핑을 하면서) 뭐가? 내가 보기엔 네가 딱인데.

H: 내가?

C: (손을 멈추고 H를 보면서) 우리 같이 연극부 할 때 네가 쓴 대본으로 무대 올렸잖아. 그걸로 상도 타고.



H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그때를 생각한다.



H: (다시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담담한 목소리로) 난 좋아했어. 네가 쓰는 글.



H가 샤프를 돌리던 손을 멈춘다. 시선은 C에게로. 때마침 대본을 다 읽은 조원들이 H에게 말을 건넨다.



조원 1: 와, 이거 정말 잘 쓰셨는데요?

조원 2: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H: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써볼게요.



S#.5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밖)



걸어가는 H의 뒷모습이 보인다. 복잡한 H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처럼 화면이 흔들린다.



H: (NA) 어쩌면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도, 조원들의 칭찬도.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건드린 느낌이었다. 이야기, 꿈, 그런 것들. 내가 글을 쓰면서 느낀 감정은 행복이었다.



S#. 일상몽타주 (낮/안)



공부를 하다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덮고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읽는 장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영 집중을 못 하는 듯한 모습이다.



H: (NA) 그 이후로 나는 정신없이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토익 공부를 잠시 그만두고, 아프다는 핑계로 스터디도 종종 빠졌다. 시간이 나면 예전에 샀던 대본을 읽었다. 한동안 그렇게 지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S#.6 영신관 앞 벤치 (낮/밖)



C: (휴대폰을 만지면서) 작년에 우리 동아리 행사 기획했던 거 남아있어? J 오빠가 자료 좀 보내달라는데.

H: 아마 있을걸? 그거 전에 내 메일로 보내놨던 것 같은데… 잠깐만, 한번 찾아볼게.



H가 자료를 찾으려고 메일함을 여는 순간, 누군가의 메일이 도착한다. 제목은 [미래의 작가님에게]. H는 “나한테 메일 보낼 사람이 없는데?”라고 말하면서도 일단 제목을 클릭해본다.



H: (NA) 안녕하세요. 블로그에 올려두신 단편을 읽고 메일을 보냅니다. 얼마 전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져서 많이 힘들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작가님의 글을 보게 되었어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던 차에, 작가님이 마지막에 쓰신 “나뭇가지는 부러지는 게 아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휘어지는 것뿐이다.” 라는 대사를 읽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알바를 하면서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어요. 고등학생이라고 하셨고, 벌써 이 글이 올라온 지 몇 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대학을 다니는 중이실지도 모르겠네요. 블로그 소개에 있는 글처럼 언젠가 좋은 작품으로 스크린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할게요. 익명의 독자가.



자료를 찾아보겠다던 H가 말없이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 C가 H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C: (의아한 표정) 왜? 없어?

H: (메일을 보여주며) 아니, 누가 나한테 메일을 보냈어. 내가 예전에 올려놓은 걸 봤대.

C: (내용을 훑어보고 엄지를 들어보인다) 야, 좀 멋있다. 너 보고 작가님이래! 처음으로 편지를 받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마이크를 든 것처럼 A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H: (정말 인터뷰라도 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장단을 맞춰준다) 어, 일단 좀 얼떨떨하고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누가 내 글을 읽은 것도 신기하고...



H: (미소를 지으면서. Voice over)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H: (들뜬 분위기,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 이거 해야겠다, 진짜로.

C: (A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래, 한번 해봐. 넌 잘할 거야.

H: (손을 키보드에 올리고) 고마워. 아, 답장 뭐라고 쓰지?



H: (NA)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일이라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라고 처음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S#.7 자매의 집 (낮/안)



H는 의자에 앉아있고 B는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다.



H: (머뭇거리며) 언니, 나 할 말이 있는데…

B: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H를 바라본다) 왜? 요즘 공부하는 게 힘들어?

H: 응, 나랑 잘 맞는 것 같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게 생겼어.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B: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래? 그런 건 일 하면서 취미로 해.

H: 나는 작가를 직업으로 하고 싶어.

B: (이해가 안 되는 듯) 글쎄. 그건 별로 좋은 직업도 아닌 것 같은데. 돈도 못 벌고. 굳이 그런 걸 해야겠어?

H: (말끝 흐리며) 물론 공무원도 좋은 직업이지만… 난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어.



B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린다.



B: (팔짱을 끼고 H를 바라본다) 난 네가 돈 적당히 잘 버는 직업을 가지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취미로 하면 되잖아?



B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다.



B: 그냥 그거 하나만 포기하면 돼. 딱 그거 하나만.



S#.8 학교 근처 카페(저녁/밖)



캐주얼한 차림의 J와 단정하게 입은 B가 마주보고 앉아있다.



B: 야, 넌 갈 때도 갑자기 사라지더니 올 때도 갑자기 오냐? 유럽은?

J: (웃으면서) 아, 완전 재밌었지. 근데 너 동생이랑 다퉜다며?

B: (한숨을 쉬며) 그게 벌써 거기까지 갔냐? 작가 하겠대. 들어서 알겠지만.

J: 나 걔네랑 같은 동아리잖아. 흠. 너네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쓰긴 했지.

B: 재능 있는 거야 잘 알지. 그래도 글 쓰는 걸로 먹고 사는 게 어디 쉬워? 난 그냥 걔가 좀 편하게 살았으면 해서 그런 거야.

J: 물론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 여행하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보니까, 모든 직업은 어떠한 면에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B: (말끝을 흐리며) 그거야 그렇지만…



그때 J에게 연락이 온다. 답장을 보낸 J가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팔짱을 낀다.



J: 참. H 이야기 들으니까 생각나는 거 하나 있다. 이번에 피렌체 갔을 때 어떤 한국인을 만났거든? 근데 자기가 <북극성>을 쓴 사람이라는 거야. 너도 그 책 알지?

B: (커피를 마시며) 당연하지. 그때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잖아. 연예인들도 막 인증하고. 돈 엄청 벌었겠네.

J: 나 싸인도 받았다? (목소리를 낮추며) 근데 그 사람, 그거 S전자 때려치우고 쓴 거래.

B: (갸웃하며) 그렇게 좋은 데 들어가 놓고 제 발로 나왔다고? 왜?

J: 막상 들어가보니 적성에 안 맞았다고 하더라. (커피를 마시고) 그래서 나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운지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소설이었다는 거야. 일을 할 땐 하루하루 버티는 게 고역이었는데, 글을 쓰면 자기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대.

B: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했구나.

J: (어깨를 으쓱하면서) 물론 그런 케이스가 흔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라면 돈은 좀 못 벌고 힘들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할 것 같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행복하지 않겠냐?

B: (잠깐 생각하다가 J를 본다) 네 말도 맞는 것 같네.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S#.9 도서관 뒤편 (낮/밖)



H가 벤치에 앉아있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진다. 고개를 드니 B가 쇼핑백을 들고 있다.



H: (의아해하며) 여긴 웬일이야?

B: (쇼핑백을 내밀며) 자, 이거.



H가 쇼핑백 안을 들여다본다. 노트, 펜, 대본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H: (대본을 꺼내며) 이게 다 뭐야?

B: 너 하고 싶은 거 해. 돈은 걱정 말고.

H: (휘둥그레) 진짜? 거짓말 아니지?

B: (장난으로 다시 가져가려는 척) 아, 속고만 살았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받아라.

H: (못 가져가게 등 뒤로 숨기면서) 치사하게 줬다 뺏네?

B: 그리고 저번엔 미안했다. 나는 좋은 직업의 기준이 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H: (활짝 웃으면서) 고마워. 나도 열심히 해볼게.



집으로 가는 자매의 뒷모습이 보인다.



B: (손을 들며)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H: (눈을 깜빡이며) 뭔데?



주변 소음이 점점 커지면서 자매의 목소리가 묻히고 장면이 전환된다.



S#.10 H의 집 앞 카페 (낮/안)



[BGM] 밝은 분위기의 음악

책상에는 노트와 펜, 대본들이 있다. 노트북 화면에는 B가 조건으로 내건 “대학생 시나리오 공모전” 포스터가 떠 있다. 포스터를 보던 H는 잠깐 생각하다가 펜을 잡는다. 배경으로 깔리는 인터뷰 소리(먼 미래 시점)



기자: 그렇게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던 거군요.

H: 네, 1년 안에 공모전에 입상해서 성과를 보여주는 게 조건이었거든요. 언니 입장에서도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 지원해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때 나간 대학생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죠.

기자: 작가님은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H: 우리 사회는 인생에도 모범답안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에요. 10대, 20대에 해야 할 게 정해져 있고, 그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은 낙오자 취급을 받아요. 그러니까 다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시점에 방향을 잃고 멈춰 서게 되는 거죠.

기자: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런 사회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H: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은 없지만… 작가라는 직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위로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각사각 무언가 쓰는 소리. 잠시 후 H가 손을 치우면 그 아래 제목이 보인다. <불안하고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



H: (NA) 불안하고 아름다운, 나의 꿈에게.



[BGM] 희망찬 분위기의 음악

H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 가운데에 천천히 제목이 나타나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 https://youtu.be/Oy_DkMWu8DY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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