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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의 자유비행 Aug 09. 2021

[소설단평] 1. 분노와 자기 혐오에 잡아먹힌 사람들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나의 2020년은 ‘적응’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무언가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다 지난 1년을 다 보내버렸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2020년을 돌아봤을 때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백신이다 인공지능이다 비대면 사회다 옥상에 지어질 개인 비행장이다 뭐다 하며 사회는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었고 나는 뒤처지지 않고자 허덕이며 달렸다.

  언젠가 뉴스를 통해 코로나로 인한 청년 우울증이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80% 이상의 청년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고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레드’로 향해 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길에 어느 순간이 되면 만발하는 개나리, 벚꽃, 철쭉 같은 “흔하고 예쁜 꽃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 있더라도 봄이 되면 자연스레 그 꽃들을 떠올릴 수 있다. 지천에 흔히 피니 기다릴 수 있고 역시 개나리는, 벚꽃은, 철쭉은 예쁘구나, 감탄할 수도 있다. 이들은 “흔하고 예쁜 꽃”이며 흔해서 예쁜 꽃이다.

  최은미의 「여기 우리 마주」에는 “흔하고 예쁜 꽃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작중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잠깐 등장하고 마는 표현이지만 나는 “흔하고 예쁜 꽃들”이라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말이 현재 우리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말이다.      


  작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편에 대한 혐오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편은 화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것 같다며 “슬래시”를 쓰지 말라고 말한다. 화자는 남편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생각이란 게 없고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므로 슬래시를 사용하는 게 부득이하다고 주장한다. 뒤이어 “숨이 막히면 좀 죽어도 되지 않나”라며 남편의 죽음을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남편을 향한 적대감은 곧 남편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는 여자들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화자는 다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외로움은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으나, 원룸이라는 무인도에 홀로 고립되어 보니 그 말이 얼마나 오만한 말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외로움과 싸우며 삶을 살아내다 보면 분노가 쌓인다. 상황에 대한, 사회에 대한, 타인에 대한, 정부에 대한 모든 분노. 그러다 착한 마음을 가진 가엾은 사람들은 결국 자기 혐오로 분노를 표출하고야 만다. 고립된 방 안에서 분노와 자기 혐오에 서서히 잡아먹히는 사람의 모습은 몇백 년 동안 도시 괴담으로 전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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