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오늘의 시가
「오늘의 시가」는 화자와 연인관계인 ‘선명’이 낙지볶음을 먹으러 간 이야기를 하며 시작된다. 식당의 주인은 선명에게 산낙지와 냉동 낙지 중 어느 것을 먹을 것이냐 묻는다. 그리고는 “지금 낙지가 철이라고. 낙지는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지금의 낙지는 더 특별하고 맛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가능하면 산 것으로 드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식당 주인의 말에 넘어간 선명은 산낙지를 주문한다. 그렇게 맛있는 낙지는 과연 얼마일까. 메뉴판을 들여다본 선명은 이내 충격에 휩싸인다. 가격 대신 ‘시가’라는 단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하고 그렇게 부드럽고 그렇게 맛있는데 정확한 가격은 적히지도 않았다니. 얼마나 귀한지 알지도 못하고 얼마나 귀한지가 매일 달라지는, 그렇게 살아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어. 도대체 뭐가 매일의 가격을 정하는 걸까.”
대부분의 상품은 ‘고정된 가격’이 있다. 물가나 시세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지만, 얼추 얼마 정도라는 고정가격은 늘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가’라는 것은 정말이지, 이상하다. 매일 달라지는 가격. 오늘은 얼마에 팔지 오늘 결정하고, 내일의 가격은 또 내일 생각하는. 고정가격이 없는. 한 마디로 ‘분명하지 않은’ 무언가.
선명은 많이 아팠다. 정확한 병명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어쩌면 얼마 못 살 수도 있었다. 선명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선명과 함께 화자는 여수로 여행을 떠난다. 둘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숙소로 돌아왔고, 그날 밤 선명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선명은 사라졌지만 화자에게 선명은 여전히 ‘선명했다’. 화자는 선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선명의 말과 목소리, 표정까지도 내게는 선명하다.”고 말한다.
화자에게 선명은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화자가 선명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집 앞 단골 국밥집에 갈 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골 국밥집에 갈 때는 단돈 칠천 원만 챙겨가면 된다. 백 원도 더 가져갈 필요가 없다. 늘 먹는 국밥은 칠천 원이기 때문이다. 늘 변동 없이 내게 확신을 주는 무언가. 화자에게 선명은 어쩌면 ‘안전지대’였을지 모른다.
매일 가격이 달라진다는 것, 즉 ‘시가’라는 말은 안전함이 적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주머니에 얼마를 챙겨야 할지 모른다는 것. 오늘은 칠천 원이었지만 내일은 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선명이 흐릿하게도 아닌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것. 그럼에도 화자에게만은 “선명”했던 것.
화자는 선명이 ‘시가’를 주고 낙지볶음을 먹었다는 그 가게를 찾아간다. 그리고 낙지볶음을 주문한다. 화자와 식당 주인이 ‘시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선명하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영원히 안전한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닐까. 어느 순간 국밥 가격이 팔천 원이 될 수도, 내 옆에 언제까지나 있을 것만 같던 연인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안전을 갈망한다. 어떻게 해서든 안전지대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은 영원하지 않다. ‘안전’이라는 것은 어쩌면 선명과 화자의 관계처럼 애초에 허울뿐이었던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