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격] - Ep 06
"카톡 멀티프로필 대신 업무용 '투 폰'을 선택한 이유
혁신적인 '기술'은 어느새
혁신적인 '전자 발찌'가 되었다.
발전된 IT 기술은 조직 내 소통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화, 이메일, 화상회의부터 업무용 메신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에도 서로 앞다투어 최신 기술을 도입하며 생산성 향상을 꾀했다.
아무리 방식이 고도로 디지털화된다고 한들, 그 본질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인 '소통'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6인치 디스플레이 너머에서 메신저를 입력하는 유저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고도화된 기술의 그물망 속에서 동료와 클라이언트, 거래처라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얽매이고 있다.
'팜(Palm)'과 '블랙베리'라는 PDA 시대를 지나 최초의 아이폰이 등장한 지도 거의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고도로 발달한 스마트폰은 메신저와 SNS를 통해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속도와 효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업무 환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협업 툴을 위시한 사내 메신저가 우후죽순 현장에 도입되며 언제 어디서나 업무 연락이 가능한 환경이 일반화되었다. 모든 기업이 '스마트 워크(Smart Work)'를 천명했다. 획기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시공간적 제약 없는 기술적 초월은 역설적이게도 직장인의 공과 사의 경계를 심각하게 무너뜨렸다.
이제 업무용 메신저 앱의 알림 설정을 세세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수많은 업무 토픽(단톡) 방에서 쏟아지는 각종 알람이 순식간에 스마트폰 화면을 점령해 버린다. 물론 업무 시간 내라면 지시를 놓치지 않게 돕는 귀중한 장치겠지만, 진짜 문제는 퇴근 직후부터 시작된다.
느닷없이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이거 확인 부탁드려요.", "내일 오전에 바로 처리해 주세요."라는 팝업이 뜰 때마다 나는 매번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낀다. 케이스와 강화유리를 합쳐 고작 200g 남짓한 이 작은 기계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가 아니라, '스마트 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교묘한 최신 '전자 발찌'인 셈이다.
'투 폰' 전략으로
고혈압을 예방하다.
내가 본격적으로 '투폰(Two-Phone)'을 사용한 지는 어언 2년이 되어간다. 학창 시절 나름 테크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며 재미 삼아 두 개의 스마트폰을 사용해 봤지만, 기기를 한 대 더 들이는 비용과 매월 나가는 통신 요금 그리고 제일 중요한 파편화가 불러오는 귀차니즘은 꽤나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기껏해야 대학생이 핸드폰 두 대로 할 일이 굳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말단을 지나 직급이 올라가고, 내가 맡은 업무와 공적인 인간관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저녁 6시가 지나서도 직장 상사부터 거래처까지 온갖 이들의 호출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일상으로 고착되자, 급기야 직장 상사는 본인이 퇴근하며 운전하는 30분 동안 내게 전화하는 것을 아예 기본 루틴으로 삼았다. 그는 업무 후 연락을 너무도 당연시했지만, 나는 매번 액정에 상사의 이름이 뜨고 진동할 때마다 긴장감과 함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시간이 흘러 사내에서 어느 정도 내 입지가 다져지고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나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자, 도입부에서 언급했듯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그저 단순한 취미였기에 밥값이 아까워 포기했지만, 이제는 이러다 멘탈이 망가져 정신과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주 주말이 되자마자 '당근마켓' 앱을 켜서 중고 구형 '갤럭시' 한 대를 고민 없이 사들였다. 상사나 거래처의 말 바꾸기, 업무 시간 외의 부당한 지시,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통화 녹음'까지 지원되는 완벽한 업무 기기였다.
내 투폰은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나를 정신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안전하게 지켜줄 '호신용 무기'이자 '블랙박스'였던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퇴근과 동시에 지체 없이 서브폰을 무음으로 돌리거나 아예 전원을 내려버렸다. 서브폰인 갤럭시의 화면이 까맣게 암전 되는 순간, 그제야 비로소 나의 온전한 '진짜 하루'가 시작되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회사가
주말 동안 200개의 메세지를 보내는가?
자주 내 글에 최악의 예시로 등장하는 직전 직장에 갓 입사했을 때 일이다. 신규 직원들과 함께 본부장과 첫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우리 항상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급한 일로 퇴근한 직원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고. 여러분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숟가락을 내려놓고 바로 도망쳤어야 했다는 것을.
입사 후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 숙련도와 상관없이, 사내 메신저의 토픽(단톡) 방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증식했다. 나중에는 일일이 알람 설정을 끄는 것조차 지친 나머지, 퇴근하는 즉시 서브폰의 전원을 아예 꺼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업무를 마친 나는 평소의 루틴대로 가차 없이 갤럭시의 전원 스위치를 내리고 평화로운 주말을 알차게 보냈다.
문제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서브폰을 다시 켰을 때 벌어졌다. 전원이 켜지기 무섭게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리더니, 바탕화면에 무려 200개가 넘는 팝업 배지가 순식간에 찍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러나 소름 돋는 사실은, 그중 1분 1초가 급박해서 내게 온 메시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만일을 대비하여 본부장의 스파이를 제외한 진짜 내 팀원과 일부 막역한 동료들에게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메인 폰 번호를 알려둔 상태였다. 진짜 회사의 명운이 걸 일이었다면 애초에 동료 직원에게서 이 회선으로 다급하게 연락이 왔을 터였다. 그리고 이 200개의 영양가 없는 메시지 중 단 하나라도 주말에 읽었다면, 마치 화장실에서 볼일을 덜 닦고 나온 것처럼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에 주말 내내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시스템의 알림을 무시하는 나의 소극적인 방어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과 가스라이팅이 난무하던 이 기괴한 회사의 폭력성은, 단순한 메신저 팝업을 넘어 선을 넘은 물리적 전화벨을 울리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같은 팀장이자 퇴근 후 나와 자주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막역한 사이인 정환(가명) 팀장은 잦은 회식 탓에 전날 새벽까지 술을 달리다 초주검이 되어 출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유독 초췌한 몰골과 굉장히 분노로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출근했다. 평소의 단순한 숙취와는 차원이 다른 살기(?)마저 느껴졌다.
사무실 식구들 모두 그가 숙취에 찌든 모습은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나 평소 분위기 메이커인 그가 오전 내내 입을 굳게 다문 채 뿜어내는 분노의 아우라는 평소의 모습과는 확연히도 달랐다. 너도나도 그에게 안부를 물었지만 "괜찮아요"라는 영혼 없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날 점심, 함께 밥을 먹으며 나는 넌지시 "뭐 안 좋은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속사포로 랩을 하듯 울분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날 밤, 평소처럼 술을 마시며 자정을 넘겼을 무렵 갑자기 본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는 심각한 문제가 터진 줄 알고, 알코올 기운에 꼬부라진 혀를 부여잡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통화 내용은 가관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긴급한 과업에 대한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업무 내역을 들먹이며 불필요하게 감정 섞인 질책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만약 내 메인 폰 번호를 저 인간이 알고 있었다면? 어젯밤 그 자정의 융단폭격은 정환 팀장이 아니라 나를 향했을 수도 있었다는 섬뜩한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투폰 레지스탕스'의 결성
이 소름 끼치는 '자정 전화 괴담'은 당사자와 나의 입을 통해 사무실 전체로 삽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다음 타깃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주니어 직원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졌다. 심지어 정환 팀장 말고도 같은 방식으로 자정 질책을 받았던 숨은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쏟아졌다.
사실 회선을 하나만 사용하면 언제 회사로부터 걸려올지 모르는 연락에 대한 불안감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사생활 노출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사적으로 친한 동료를 제외하면, 굳이 내 개인 메신저나 SNS를 직장 상사와 공유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대안으로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멀티프로필' 기능에 기대지만, 이마저도 완벽한 방패는 아니다. 프로필 노출 대상을 일일이 지정하는 작업 자체가 피로를 유발하고, 최근 업데이트 버그로 멀티프로필이 설정이 해제되어 버리는 대참사까지 발생하면서 플랫폼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졌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내 '메인 폰'에는 본부장의 번호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과 사를 완벽하게 분리해 주는 이 물리적 단절은 나의 내면에 깊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이 짜릿한 평화를 나 혼자만 독차지할 수 없었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알람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점심시간마다 한숨을 내쉬는 동료들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이들의 고통을 방관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내 소소한 IT 지식과 기기 세팅 능력을 발휘해 일종의 '투 폰 레지스탕스(Two Phone Resistance)'를 결성했다.
무책임하게 동료들에게 단순하게 "폰 하나 더 사세요"라는 조언을 넘어 실용적인 가이드를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평소 취미인 중고 거래로 쌓은 배경지식을 살려, 가성비 좋게 구할 수 있는 중고 구형 갤럭시 모델들과 시세를 리스트업 하여 상사가 없는 '실무자 전용 톡방'에 은밀히 공유했다.
또 다른 걱정거리인 통신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월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유지할 수 있는 초저가 알뜰폰 가입법과 처음에 어려울 수 있는 유심 개통 방법도 전수했다.
기기와 회선이라는 '하드웨어'적인 환경이 완성된 동료들에게는 '소프트웨어'적인 연락처 및 SNS 계정 이원화 세팅 방법까지 하나하나 아낌없이 알려줬다.
심지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동료들에게는 'eSIM'으로 보유한 스마트폰 하나로 2개의 회선을 동시에 활용하는 일종의 '플랜 B'를 만들어 주었다.
그야말로 직원들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각자의 상황에 맞는 가이드와 컨설팅을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이 철저한 가이드를 무기 삼아, 나는 마치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불법 무기를 유통하는 어둠의 브로커가 된 기분으로 동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의 양손에 스마트폰이 두 개씩 들려 있는 진풍경은 우리 사무실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퇴근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좁은 공간 안에서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서브폰의 전원을 끄고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던져 넣는다. 모두가 침묵한 채 동시에 실시하는(?) '추가 업무 프로세스'를 마치고 나면 서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마치며,
"법은 멀고 카톡은 가깝다."
최근 정부는 여전히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낡은 근로기준법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제법 확고해 보인다. 당장 2026년 상반기 내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를 추진 중이니 말이다.¹ ²
하지만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불합리가 만연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사각지대까지 온전히 작동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현장에서는 영영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법은 멀고 카톡은 가깝기 때문이다. 법안의 세부 항목이 논의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퇴근한 청년의 스마트폰 잠금화면에는 직장 상사의 전화벨이나 화면을 켜기조차 두렵게 만드는 업무 메신저 팝업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 시대의 청년들은 퇴근 후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불편한 현실이다.
물론, 회사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리드하거나 일정 직급 이상에 올랐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마땅히 짊어져야 한다. 퇴근 후의 내 시간이 아무리 소중한 권리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조직의 일원으로서 '프로'다운 태도를 갖춰야 한다.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상황일 때 그저 '투폰의 단절'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취한다면, 이는 내가 지난 [Ep.03 : "우리는 '영포티'와 다르게 늙을 수 있을까?"]에서 경계했던 맹목적인 '방어적 합리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회사와의 단절'을 넘어 궁극적으로 '본인의 가치를 단절'시키는 뼈아픈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나에게 굳이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와 제도가 내 퇴근 후의 정당한 일상을 완벽하게 지켜주지 못한다면, 나는 이 사적이고도 물리적인 '퇴근 버튼'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무원칙과 붕괴된 워라밸이 여전히 조직과 사회에 존재하는 한, 온전한 인간성과 상식을 사수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한 달에 약 3만 원이 채 안 되는 '보안 유지비'를 주저하지 않고 구독할 것이다.
Reference
1. 고용노동부. (2025).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보장,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안 국무회의 의결.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57963
2. 이광선. (2025). 노동약자 지원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의 주요 내용 및 시사점. 율촌 뉴스레터. https://www.yulchon.com/ko/resources/publications/legal-update-view/39136/pag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