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똥' 때문에 퇴사해 봤다.

[청년실격] - Ep 05

by Pin

"대변을 보려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트는 것으로 시작해서
경영진의 도덕적 파산으로 마무리하는
어느 '명함 콜렉터'의 지독한 스탠드업 코미디"




시작하며.
'명함 콜렉터'의 탄생,
그리고 사직서의 무게

앞선 [프롤로그 : "다시 '쉬었음 청년'으로 돌아오며"]에서 지방으로 귀향한 후 연이은 이직 실패로 커리어가 꼬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잦은 퇴사를 반복하다 보니, 내 책상 서랍 맨 밑 칸에는 스쳐 지나간 직장들에서 챙겨 왔던 명함들이 훈장인지 흉터인지 모를 모습으로 수북하게 쌓여 있다.


퇴사 당일 짐을 싸서 나올 때는 "이딴 종이 쓰레기를 왜 집까지 가지고 왔지?"라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귀가한 후 괜히 챙겨 온 명함들을 기분 나쁘게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특유의 게으름 탓에 나도 모르게 서랍 구석에 처박아 둔 채 세월이 지나도록 까맣게 잊고 지냈다.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 그 묵은 서랍을 다시 열어보니 기분이 참 묘하다. 마치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블랙 코미디' 스탠드업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코미디언이 된 기분이랄까. 지긋지긋했던 재직 경험들이 이제 제법 쓸 만한 글의 안줏거리로 다가오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퇴사 횟수 = 사직서 수 = 명함 수'라는 이 기막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가감 없이 풀어보려 한다.




가장 '황당'했던 퇴사 사유.
인간의 기본권마저 생략된 인프라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스타트업에서 나는 꽤 많은 업무 테크닉을 배웠었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사표를 던진 이유는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배변권'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는 경영, 사업, 연구를 각각 전담하는 '3인 공동 임원', 일명 '삼두정' 체제라는 기묘한 구조로 굴러갔다. 사공이 셋이니 실무자들의 업무 피로도가 높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업부 본부장이 자신이 원하는 사무실을 찾았다며 독단적으로 부동산 가계약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던 산학협력단의 인프라는 꽤 훌륭해서 굳이 이사를 강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단독 사무실'이라는 허상을 좇았다. 이를 여러 번 피력했고, 경영진들의 꿈이었기에 실무진들은 불만이 있어도 딱히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선 조치 후 보고' 식으로 가계약 이후에야 '사후 답사'를 다녀온 여직원들의 반응이었다. 평소 그렇게나 상냥하던 동료들이 사색이 되어 오죽하면 격무에 지친 나를 붙잡고 애원했다. "주임님, 시설이랑 장비에 대해서 잘 아시니까 제발 새 사무실 좀 다녀와 주세요. 제발 본부장님 좀 막아주세요!"


그 간절한 외침에 나는 나름의 사명감과 레이저 줄자로 무장한 채 새 사무실 예정지로 출동했다. 도착해 보니 직원들의 경악은 결코 엄살이나 호들갑 따위가 아니었다. 새 사무실 예정지는 원래 낡은 아틀리에 용도의 공간이라 부서별로 좌석 배치를 나누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심지어 교통 체증의 한복판이라 출퇴근 시간마저 길어지는 총체적 난국의 위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가볍게 씹어먹는 최악의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복도에 상가 공용 화장실조차 없는 낡은 건물이라, 사무실 구석에 가벽을 덕지덕지 붙여 조립식 화장실을 욱여넣은 구조였다. 그래서 방음은커녕 세면대 물만 틀어도 사무실 전체에 물소리가 '우퍼 스피커'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나는 나름 친화력을 발휘하여 아직 그곳에 입주해 있던 타 기업 직원에게 이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니, 물만 틀어도 소리가 이렇게 큰데... 혹시 똥 쌀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죠?"


지금 생각해도 체면 따위 내던진 정말 직설적이고 더러운 화법이었지만 그때는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내가 그랬을까? 그는 흐린 눈을 한 채 내가 보내는 당황스러운 시선을 애써 피하며, 말없이 화장실 문 밖 협탁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앙증맞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다. 이곳에서는 큰일을 보려면 스피커의 전원을 켜서 웅장하거나 테크니컬 한 음악으로 '배변의 파열음'을 덮어야만 했다. 누군가 스피커 전원을 켜는 순간, 사무실의 모두가 그 사람의 장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는 기막힌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셈이었다.

이 기막힌 비상사태에 모든 직원들이 달려들어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근처 가장 가까운 상가 화장실이 어디인지, 다른 대안이 있는지 해결 방법을 뒤져봤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급기야 본부장을 붙잡고 계약 취소를 읍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탑다운 방식의 '까라면 까'라는 싸늘한 대답뿐이었다.


모든 사무실 구성원들은 그만 멘탈이 나가버려 모두 자리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대로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서로의 '배변음'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할 예정이었다.


그때 맨 처음 내게 답사를 부탁했던 여직원이 다가와 다 포기한 듯 해탈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사무실 이전하고 누가 먼저 퇴사하면 저도 따라서 바로 퇴사하려고요. 호호." 실로 시원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기점으로 퇴사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본부장이 그 끔찍한 곳을 덜컥 계약한 이유는 그저 부동산 아줌마의 현란한 말솜씨에 속절없이 낚였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면 '배변 이슈'(?) 때문에 퇴사한 웃픈 썰 같지만, 본질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리더의 독선', 지독한 소통의 단절, 그리고 직원의 기본적인 존엄성조차 고려하지 않은 얄팍한 안목이 진짜 문제였다.

만약 대표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혹은 본부장이 부동산 업자의 혀놀림에 귀가 팔랑거리지 않고 실무진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소통했다면, 나는 여전히 그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었을까?




가장 '마음이 지쳤던' 퇴사 사유.
30억의 기댓값과
믹스커피의 모럴 해저드

첫 번째 명함을 종이 쓰레기 통에 처넣고, 두 번째 명함을 꺼내 들었다. 이곳은 다행히도 '생리 현상'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경영진의 '양심'과 직원을 향한 '애정'은 철저하게 거세된 곳이었다.


어느 날 대뜸 직원들을 소집한 대표는 작년의 저조한 실적을 들먹이며, 올해는 우리 부서가 30억 원을 수주해 오는 '제안서 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에 쓸모가 없으니 나갈 준비를 하라"는 협박성 폭언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과거 폭언으로 인한 관리자들의 집단 사직 사태의 진통을 겪고도, 리더의 소통 방식은 단 한 치도 개선되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나와 실무진의 능력이 부족해 실적이 저조했다면 기꺼이 분노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진짜 문제는 처참한 업무 인프라였다. 연 30억을 벌어오라면서 직원들 손에 쥐여준 무기는 고작 '구글 드라이브'가 전부였다.


팀장급에게 지급된 사무실 내 최고 사양의 컴퓨터조차 무려 외장 그래픽카드 하나 없는 2021년 산 깡통 조립식 PC였다. 무거운 영상 편집은 고사하고, PPT 제안서가 30장을 넘어가면 화면이 뻗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비롯한 남직원들이 일일이 컴퓨터 뚜껑을 열어가며 '땜빵식' 유지보수를 전담해야 했다.


소프트웨어 지원 역시 처참했다. 부서당 어도비(Adobe) 라이선스가 고작 하나뿐이라 동시 작업은 불가능했다. 눈앞의 마감에 쫓긴 실무진들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의 경로에서 '불법 크랙'을 구해 아슬아슬한 범법의 줄타기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를 가장 질리게 만든 것은 직원을 대하는 회사의 밑바닥 태도였다.

거창한 휴게실이나 흔하디 흔한 캡슐 커피 머신을 바란 것도 아니다. 이 회사는 지친 직원들의 뇌를 각성시켜 줄 최소한의 카페인인 '믹스커피'와 '카누'마저 복리후생 성격의 '간식비'가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해 A4용지를 사듯 '비품비'로 결제하는 곳이었다.


본인들의 목표대로 수십억의 이윤을 창출할 인적 자원에게 푼돈조차 아까워하는 회사의 쪼잔함은 모든 실무진들을 극도의 피로감으로 몰아넣었다. 당연히 사무실엔 스트레스의 포화로 매일같이 욕설과 고성이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실적이 저조하다면 직원들의 노고를 비하하며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누수를 찾고 총알을 보강해 주는 것이 경영진의 마땅한 의무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제공하지 않은 채 30억의 기적만 바라는 리더의 지독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속에서, 나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련 없이 두 번째 사직서를 던졌다.




'최악'의 퇴사 사유.
근로기준법 미준수와
도덕적 파산

두 번째 명함마저 휴지통에 처넣고, 이제 가장 쳐다보기도 싫은 마지막 명함을 집어 든다. 어찌 보면 사직서의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가장 최근의 뼈아픈 기억이다.


앞선 두 곳이 열악한 인프라와 얄팍한 양심의 문제였다면, 이곳은 아예 국가가 정한 '노동법의 테두리' 자체가 붕괴된 최악의 무법지대였다.


내 이전 글인 [Ep.01 : "청년들이 기꺼이 야근하지 않는 이유"]에서 잠시 다루었던 바로 그곳이다.

이들은 노동법의 생리를 잘 아는 내게만 수당을 철저히 챙겨주며 모종의 '침묵'을 종용했다.

그러고는 팀원들을 법의 사각지대에 몰아넣고 믹서기에 갈아버리듯 소모시켰다. 불합리한 야근에 불만이 쌓였지만, 내향적이라 표현도 못하는 주니어 직원들에게는 "그러니까 월급 더 받고 싶으면 능력을 키워라", "너처럼 무능한 애는 처음이다."라는 폭언과 가스라이팅은 기본이었다.


나는 중간관리자로서 그 알량한 수당(애초에 법적으로 원래 받아야 하는 수당이다.) 몇 푼에 눈감아주는 '공범'이 되기 싫었다. 내가 대단히 숭고한 도덕군자나 박애주의자가 아닐지언정, 그 정도로 도덕성이 결여되고 비겁한 괴물이 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나는 내 팀원들을 끔찍이 아꼈다. 이들이 나의 모교 후배들이라는 각별함을 넘어, 이미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응원하는 끈끈한 '동료'가 되어 있었기에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하는 보수 하나 없이 믹서기에 갈려 나가는 것을 단순히 방관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해 침묵을 깨고 C레벨과 정면충돌을 택했다. 무너진 인프라와 붕괴된 HR 시스템, 형편없는 부서 간 협업 프로세스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결정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 '근로기준법 미준수'라는 문제를 꺼내어 강하게 성토했다.


돌아온 대답은 허탈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드랍해도 좋고 퇴사할 때 수당을 더 챙겨줄 테니, 제발 당장 조용히 퇴사해 주세요."라는 요구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같이 급진적이고 완벽한 문제 해결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팀을 위해 점진적 개선책이나 현재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향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버거운 진실이 사무실 전체로 퍼져나가는 걸 덮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신속히 지워버리는 쪽을 택했다. "당장 그만둬 달라." 그것이 무능하고도 양심 하나 없는 그들이 내놓은 가장 손쉽고도 참담한 최종 해결책이었다.




마치며,
어쩌면 나는 정말
위선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 명함마저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텅 빈 서랍을 닫는다.


잦은 퇴사와 이직의 반복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어 한때 내게 질병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부조리를 버티는 것은 단순한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실제로 망가지는 치명적인 리스크였다.


불가피하게 길어진 휴식기 동안, 나는 "내가 사회에 쓸모없는 부적응자인가?" 하는 지독한 패배감에 시달렸다. 솔직히 말해 그 불안감은 지금도 이따금 내 발목을 붙잡는다.


어쩌면 이 모든 핑계의 기저에는, 어떻게든 내 손만큼은 더럽히고 싶지 않은 나의 '위선'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직이라는 이름 아래 동료의 고혈을 짜내는 착취의 구조 속에서, 나 역시 그 시스템이 낳은 또 다른 '희생자'이자, 동료들이 사각지대에서 믹서기처럼 갈려 나갈 때 알량한 수당 몇 푼을 쥐고 침묵해야 하는 '잠재적 가해자'였다. 그래서 끔찍한 카르텔의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현실감각이 부족한 바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성과 상식을 지키는 '정상인'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딱히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원칙 없이 침몰해 가는 배들 속에서, 내면의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기꺼이 구명정에 몸을 실었을 뿐이다.



이 글을 쓴 오늘까지도 나는 수없이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장에 앉는다. 좋은 기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뻔히 보이는 나쁜 기업의 제안은 내 손으로 쳐내면서. 그렇게 나는 지금도, 지극히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직장'을 찾아 묵묵히 헤매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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