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야근'이 파괴해 버린 청년의 미래

[청년실격] - Ep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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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나면 밤 10시예요.
누워서 쇼츠 볼 기운도 없는데 언제 어떻게 연애를 해요?"



'악성 매물'이 되어 버린 기형적인 관행

최근 20-30 세대를 덮친 큰 사회 문제는 크게 '쉬었음 청년'으로 대표되는 취업난과 혼인·출산율 저하를 꼽을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원인으로 언론과 전문가들은 연일 경제, 주거, 가치관 등의 변화를 거시적인 이유로 든다. 그러나 이를 주제로 발행된 기사와 칼럼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미묘하게 이들이 언급을 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공짜 야근'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공짜 야근의 원인인 '포괄임금제'나 '고정 OT'의 악용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는다.


저번 [Ep.01 : "청년들이 기꺼이 야근하지 않는 이유"]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최근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선 의지가 실천되어 악법인 '포괄임금제'가 마침내 사라질 예정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 제도가 알고 보면 명문화된 법조차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히 기업의 편의를 위해 '판례에 의한 법적 해석'으로 연명해 이어지던 기형적인 관행이다.


실은 이 포괄임금제 규제는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층의 호의를 사기 위해 자주 등장한 단골 '허위 공약'이었다. 무려 7년이 넘도록 선거판마다 떠도는 악성 '허위 매물'로 방치되어 왔으나, 최근에 새 정부는 악행을 두고 보지 못했는지, 입법을 기다릴 새도 없이 행정력을 동원하여 선제 조치를 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영지원 업무 현장에서는 지금까지 고정으로 퉁치던 임금을 이제 다시 정량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미리 제도 변경에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동시에 지금까지 공짜 야근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던 경제계는 각종 언론플레이로 "포괄임금제의 폐지는 도리어 노동자에게도 손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논지를 펼치는 추세이다.¹ ²


그러나 쏟아지는 기사들 사이, 정작 포괄임금제나 고정 OT로 파생된 '공짜 야근'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년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대변해 주는 글을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 불편한 진실을 다뤄보게 된 이유이다.




불가시(不可視)의 카르텔이 가져온 파국

'공짜야근'이 품고 있는 곪아 터진 문제들이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난 이유는 명확하다. 철저하게 기업과 기득권 한쪽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된 비대칭적 착취 구조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경영계는 이를 '합법'으로 가장한 인건비 절감의 면죄부로 여겨왔다. 90년대부터 현대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폐해가 파생되었다. 그럼에도 '공짜 야근'이라는 직관적인 단어와 비판적 프레임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³ ⁴ 이마저도 2023년 고용노동부의 포괄임금제 기획 감독이 본격화되고 "공짜 야근을 근절하겠다."는 정책 슬로건이 발표되면서, 언론이 마지못해 기사화에 나섰기 때문이다.⁵


그러자 같은 공짜 야근이지만 '포괄임금제'를 '고정 OT(고정연장수단)'로 명칭만 교묘하게 바꿔가며 편법을 일삼기 시작했다. 본질적인 노동 환경의 개선 없이 이름만 바꿔 사람을 갈아 넣는 비합리적인 구조의 지속은 필연적으로 과로사와 같은 극단적인 희생자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이후 참담한 사고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찾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특정 악덕 기업'만의 윤리적 일탈로 선을 그으며 교묘하게 꼬리 자르기를 시전 한다. 부조리를 감시하고 폭로의 스피커가 되어할 언론사 스스로가, 사실은 공짜 야근 악용의 최전선에 서 있는 거대한 '공범'이기 때문이다.⁶


언론이 쳐놓은 이 기만적인 프레임 뒤의 현실은 훨씬 더 참담하다. 희생자가 비극적 기사의 헤드라인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도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굴지의 반도체·IT·대기업들은 제도를 악용하여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왔다.

산업계를 이끄는 윗물이 이토록 탁하니 아랫물이 맑을 리가 없다. 허술한 시스템의 맹점을 파고드는 이 악습은 자연스레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까지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독버섯처럼 번져나갔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고발하는 신고가 빗발치고 희생자들이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도, 역대 정부와 관할 부처들은 행정력의 한계를 핑계로 사전 단속을 암묵적으로 회피했다. 선제적 '예방' 대신 소극적인 민원 처리와 사후 조치에만 급급했던 국가의 직무 유기 역시 이 사태에 결정적인 한몫을 했다.⁷


기업의 기만, 언론의 침묵, 그리고 행정부의 방조. 이 모든 구조적 실패의 퍼즐이 하나로 맞물렸다. 판례라는 얄팍하고 비양심적인 방패 뒤에 숨어 거짓 명분을 얻은 이 거대한 '공짜 야근'은 결국 대한민국 노동 시장과 사회에 보편적인 기본 값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견고한 착취의 카르텔화는 과연 청년들의 삶에 어떻게 파국을 가져다줬을까?




1.
생명이 사라져도,
증거는 남기지 않는다.

이전 글에서 잠깐 다뤘지만, 만성적인 야근과 과로 환경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생존권인 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한 근로가 지속되면 뇌의 감정 조절과 문제 해결 능력을 담당하는 영역에 물리적 손상이 발생한다.⁸ ⁹ 더 나아가 주 60시간 이상 과한 노동에 노출되면 심뇌혈관질환의 발병률을 59%까지 치솟는다. 이로 인한 조기 사망 추정치는 매년 1600명에 달하며, '과로'라는 이름으로 증발하는 사회적적 비용만 연간 5조 5천억 원 규모에 이른다.¹⁰


그러나 '공짜 야근'이라는 거대한 착취 구조가 지닌 가장 악마적인 이면은 따로 있다. '포괄임금제'와 '고정 OT'처럼, 일본을 제외하면 주요 OECD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꼼수를 완충 삼아, 밤낮없이 청년들이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은 초과 근로의 '정량적 데이터' 자체를 장부에서 완벽히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실제 초과 근로 시간이 하나의 고정된 수당으로 뭉뚱그려진 탓에, 노동자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극심한 직무 스트레스로 쓰러져도 기업은 "우리는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했다."는 변명을 내세워 미꾸라지처럼 책임을 회피한다.


즉, 공짜 야근은 단순한 임금 체불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건강을 소모품처럼 갈아 넣는 심각한 침해를 저지르고도, 까다로운 산재 인정을 제외하면 기업 측에 그 어떤 징벌적 책임도 묻지 못하게 방어해 주는 잔혹하고도 합법적인 '알리바이 생성기'로 작동하고 있다.




2.
쇼츠 볼 기운도 없는데
연애는 무슨...

뇌의 기능이 손상되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 청년들에게, 타인과 관계를 맺고 한 발 더 나아가 가정을 꾸릴 여력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또 다른 청년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비혼'과 '저출산 심화' 역시도 결국 '공짜 야근'이 불러온 필연적 연장선에 서 있다.


최근 저출산의 원인으로 기성 언론이 지목한 요소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과 청년들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꼽는다. 당연히 경제적 요인도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가장 근본적인 포인트는 바로 공짜 야근이 청년들에게서 앗아가 버린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과 '감정 에너지의 궁핍'이다.


흔히 취업률, 연애율, 혼인율, 출산율을 각기 독립된 사회 지표처럼 분석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하나로 연결된 단일 파이프라인이다. 정당한 퇴근 시간이 보장되어야 연애가 가능하고, 연애가 디딤돌이 되어야 가정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연장 근무로 매일 밤 8~9시에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청년들에게 연애는 그저 한낱 사치일 뿐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연애율 감소 원인을 분석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시간과 감정 에너지가 많이 소모돼서'라는 응답이 경제적 문제를 앞지른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¹¹ 이를 깊게 들여다보면, 청년 개개인이 퇴근 후 최소한의 여가나 자기 계발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절대적인 여유 시간이 증발했기에, 그 이상의 막대한 리소스를 요구하는 연애에 감히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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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 가장 선임 부하 직원이던 '시현'(가명)은 휴식 시간마다 팀원들에게 자신의 풋풋한 연애 고민을 공유하곤 했다. 매일 밤 야근으로 피로가 한없이 누적되는 와중에도, 주말에 간신히 이어가던 모임에서 호감을 표현하는 남성이 생겼다는 가슴 설레는 소식이었다.

당사자보다 오히려 우리 팀원들의 가슴이 더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매일 이어지는 숨 막히는 격무 속에서, 그녀가 들려줄 다음 데이트 후기는 한동안 우리 팀의 유일한 '도파민'이자 하루를 버티게 만드는 활력소였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시현은 우리에게 씁쓸한 표정으로 썸남과 잘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팀원들에게 통보했다. 상대방의 문제도, 그녀의 매력 부족도, 혹은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도 아니었다.

"팀장님, 제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 나면 밤 10시예요. 누워서 쇼츠 볼 기운도 없는데 언제 어떻게 연애를 해요?"

풋풋한 썸을 주제로 한 로맨스 웹툰이 맥없이 '출하(조기 연재 종료)' 엔딩을 맞은 지극히 씁쓸하고 현실적인 이유였다.

나는 그녀의 푸념을 듣고 그저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 커플의 탄생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 단지 사랑을 위해 나아갈 결단이 부족해서 발생한 나약함이 아니라 '공짜 야근'이 자아낸 잔혹한 구조적 필연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힘들고 좁은 길을 뚫고 결혼에 안착한다 해도 현실은 여전히 잔혹하다. 현재 40대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스토리를 경청해 보면 정말 처절한 전쟁터 그 자체이다. 공짜 야근이 만연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은퇴한 부모의 노동력을 동원하거나 부부 중 한 명이 경력을 포기하고 외벌이로 전향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부부 단독 육아는 애초에 '미션 임파서블'이다.


선배들의 이 지난한 굴레를 멍하니 지켜본 20-30 세대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인류 존속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스스로 '선택적 셧다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3.
자산 증식 기회의 박탈이 가져온
'빚투'의 나락

건강이라는 생존권과 연애라는 재생산권을 모두 포기한 채 일에 매달렸다면, 최소한 그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라도 주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공짜 야근'이 낳은 마지막 파국은 청년들을 극단적이고 도박적인 투자의 벼랑으로 내모는 '계층 사다리의 붕괴'다.


지난 10년간 근로 소득의 가치는 제자리걸음에 멈춘 반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치는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이는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라는 과거의 명제를 명백히 퇴색시켰다.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 50-60 기성세대 역시 가혹한 노동 환경을 감내해 온 경제 성장의 주역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들이 극복해 낸 과거의 경험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작금의 청년들이 마주한 구조적 좌절을 단순히 '정신력 부재'로 치부하여 일방적 의식 개혁을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철저하게 함구하고 외면하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과거 그들의 무보수 야근 뒤에는 두 자릿수의 예금 금리와 낮은 물가지수 그리고 '개발도상국'이라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마치 갓 발견한 금맥처럼 깃들어 있었다. 즉, "월급을 모아 은행에 저축하면 내 집을 구입할 수 있다."라는 고도성장기만의 직관적이고 확실한 보상의 사다리가 존재했다.


반면, 지금의 20-30 세대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잔혹하다. 앞서 언급했듯 노동의 가치는 제자리에 멈췄고, 쳐다볼 수 조차 없이 '바벨탑'처럼 높아진 자산 가치는 현재 청년들에게 그 어떤 미래도 보장하지 않는 일종의 '유언장'이 되었다. 일반적인 노동자의 경제적인 첫 종착지는 보통 '자가 구입'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서울을 기준으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한 때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¹² 중위 소득 기준으로는 숨만 쉬고 14~22년을 꼬박 저축해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근로 소득만으로는 사실상 주택 구입이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오죽하면 일부 극단적인 분석가들이 "빈부격차가 큰 공산주의 국가들 사이에 서울이 놓여있다."라고 혀를 찰 정도다.


아득하게 벌어진 자산 격차를 현실적으로 메우기 위해선 단순한 예·적금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퇴근 후 'N잡'을 기획하고 자기 계발을 통해 본인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만이 가장 생산적인 미래 투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윗세대가 방조한 '공짜 야근'이라는 기형적인 룰은, 청년들이 그나마 스스로 성실하게 자산을 불릴 이 귀중한 여유 시간마저 철저하게 강탈해 버렸다.


경제적 빈곤보다도 무서운 이 '시간 빈곤'에 갇힌 청년들에게 허락된 자산 증식 수단은 무엇일까? 남은 것은 일반적인 상상보다 더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법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출퇴근길의 대중교통 안이나 업무 중 화장실 변기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잠시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의 '가상화폐'와 '선물 매매'가 그들의 유일한 돌파구가 되었다. 순수하게 본인이 알뜰살뜰 모은 시드머니만 '깡통'을 차고 '청산'당한다면 비싼 수업료라 위안이라도 삼겠지만, 진짜 사회적 비극은 대출까지 끌어다가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에서 터져 나온다.¹³


언론과 기성세대는 대출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감행한 청년들을 향해 "성실하게 일할 생각은 안 하고 괜히 일확천금만 노린다."라며 혀를 찬다. 표면적으로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선택 이면에는, 어떻게 발버둥 쳐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단번에 뒤집어보겠다는 위험하고도 서글픈 충동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고도성장이라는 미래의 금맥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갱도 속에서 '공짜 야근'으로 천장마저 무너져 내리니, 그만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빚투'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쥐고 처절한 '패닉 바이(Panic Buy)'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며,
생존자 편향의 성공 신화와
남겨진 청구서의 무게

사실 복잡한 거시 경제나 사회 구조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오늘날 '공짜 야근'으로 발생한 수많은 폐해와 사회적 붕괴 현상은 결국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서'라는 명백하고 담백한 단 한 줄의 팩트에서 기인한다.


본질적으로 '공짜 야근'은 포괄임금제나 관행이라는 얄팍한 방패 뒤에 숨어 정당화될 수 있는 명분이 아니다. 타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착취하고도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행위는, 그저 법의 맹점을 교묘히 이용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이자 '구조적 폭력'일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청년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도모할 최소한의 시간마저 철저하게 증발시킨 작금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들이 당장 눈앞의 야근 수당 몇 푼을 아끼려 한 알량한 탐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국가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거대하고 파멸적인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글에서 "사람을 품는 업(業)을 하면서도, 법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지키지 않는 경영자들이 늘어가는 현실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라고 비판한 바 있다. 통계적으로 현재 실질적인 고용 권한과 정책의 키를 쥔 경영진의 절대다수는 50-60의 기성세대 어른이다.¹⁴ 으레 '어른'이라면 보호자가 되어주고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은 불합리한 룰을 유지하며 청년들의 미래를 담보로 자신들의 자산만을 불려 나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땐 더 열악했으나, 다 이겨내고 성공했다."거나 "요즘 애들은 근성과 끈기가 부족하다."며 본인들의 낡은 성공 신화를 들이미는 건 촌극은 그만둬야 한다. 이는 살아남은 소수의 결과만으로 잔혹한 착취의 과정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에 불과하다. 이 치명적 오판으로 현시대의 평균적인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 고통을 비하하고 조롱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20-30 청년들이 절대 과거 세대보다 나약해거나 근면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장 앞에 있는 이득에 눈이 멀어 기울어진 운동장과 편향적인 규칙을 세팅하고 방조해 온 기성세대에게, 이제는 이 거대한 사회적 부조리를 '결자해지' 할 엄중한 책임이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참담한 구조적 붕괴의 책임 소재에 있어 청년들의 귀책사유는 단 1%도 없다.





Reference

1) 곽용희. (2025년 5월 3일). 내 월급도 오를까?…이재명 한마디에 기업들 초긴장.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4307037ihankyung

2) 매일경제. (2023년 3월 26일). [사설] 포괄임금제 악용 막아야 하지만 폐지하면 산업 현장 혼란. https://www.mk.co.kr/news/editorial/10696500

3) 최명신. (2022년 12월 19일). 고용노동부,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업장 기획감독. YTN. https://www.ytn.co.kr/_ln/0103_202212191421223427

4) 이한듬. (2022년 12월 19일). 노동부 “포괄임금제’ 근로 감독 실시”…만연한 ‘공짜노동’ 막을까. 머니S. https://www.sidae.com/article/2022121915422280786?MTN=

5) 김지수. (2023년 2월 13일). 고용장관 "공짜야근 야기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연합뉴스TV. https://youtu.be/LRQ4K7wcPRk?si=WCI1zfS8-V5hu8tY

6) 김유경. (2023, 4월 24). 언론사 포괄임금제의 진짜 문제점. 한국기자협회. https://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5351

7) 서주연. (2026, 2월 24). 노동부, ‘공짜야근’ 주범 포괄임금 기획감독…청년 많은 100곳. SBS BIz. https://v.daum.net/v/YFpZsuLxHv

8) 홍아름. (2025, 5월 14일). 과로가 뇌 구조까지 바꾸나… 감정·기억력에 영향. 조선비즈. https://v.daum.net/v/20250514073020228

9) 지종현. (2025, 5월 22일). “장시간 노동, 뇌 구조 변화 유발” 국내 연구진이 밝혀낸 과로의 진실. 하이뉴스. https://www.hinews.co.kr/view.php?ud=2025052211213365806aa9cc43d0_48

10) 이충헌. (2019, 4월 9일). ‘과로’로 매년 1,600명 조기 사망…사회적 비용 5조 원. KBS 뉴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76528news.kbs

11) 송치훈. (2025년 2월 13일). 미혼 남녀 37.8% “연애 필요 못 느껴”…경제적 부담도 영향.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50213/131024531/2

12) Numbeo. (2024년). Property Prices Index by City. https://www.numbeo.com/property-investment/rankings.jsp

13) 김성원. (2025년 10월 17일). "잃으면 채무고통, 벌면 노동경시…20대 '셀프나락' 이대로 괜찮을까". LeDesk. https://www.ledesk.co.kr/view.php?uid=14322

14) 고용노동부. (2026년 2월 9일). "2026년 1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 발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5674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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