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스웨덴에서 살기 시작한 지 정확히 1년을 꽉 채우진 않았지만 대략 1년이 다 되어 간다. 석사 과정 1년도 마쳤고 약 3개월의 긴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꽤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이 여름 방학을 누구보다도 목 빠지게 기다렸다. 몇 번이나 다 관두고 한국에 돌아가서 내 가족들이 있는 곳, 내 오랜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익숙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곳에선 내가 살아온 환경과 방식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고 그래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들이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왜 나에게 상처만 주는 것인지 왜 이 나라는 내 우울감을 끌어내고 나의 존재감을 끌어내리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깊은 좌절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그건 그냥 누구 탓도 아니고 이 나라의 탓도 아닌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인 탓이었고 남들과 비교하고 난 왜 남들만큼 못하나 하는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을 돌보지 못한 탓이었다.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 못지않게 항상 날 챙겨주고 신경 써줬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응급실에 갔을 때,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언제나 곁에 있어 주며 내가 이겨내고 단단해지길 기다려줬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거의 1년이나 버티지 않았느냐 잘하고 있지 않냐 너 가면 우리는 어떡하냐고 해주던 친구들이었는데 난 내 감정에 휩싸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작년 스웨덴에 막 도착했을 때 석사 과정 동안 내가 이곳에서 이룰 목표들을 브런치 첫 글에 적은 적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이룬 건 하나도 없다. SFI (스웨덴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웨덴어 프로그램)도 한 달 정도 다니다가 학교가 너무 바빠서 그만뒀고 서머 잡 서머 인턴쉽도 시도조차 안 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 동안 석사를 하면서 7년 만에 학생 모드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고 내가 학사 과정 땐 쓰지 않았던 여러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데 힘들었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학사 시스템에 따라가느라 하루하루가 바빴다. 석사 지원 시 교수님 추천서를 받기 위해 교수님을 뵈었을 때 교수님께서 ‘정말 힘들 텐데 중간중간 포기 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할 텐데 딱 1년만 참아라.’라고 하셨다. 그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 와 보니 ‘딱 1년만 참아라.’라는 말이 와닿는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아깝잖아 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니 1년이 되었고 지금은 와 내가 1년이나 보내서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남은 석사 1년이 얼마나 더 힘들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그래도 나라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어떻게든 힘겨운 순간들을 잘 이겨 낼 거라고 믿는다.
스웨덴에서의 석사 과정을 추천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은 적 있는데 나는 다른 나라에서 석사를 해본 적 없기에 비교 대상이 없어서 정확한 답변을 줄 순 없지만, 어디를 가든 내가 하기 나름일 거로 생각한다. 다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학생들에게 정말 다양한 기회들이 열려 있고 학생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 같다. 그게 학생들의 가능성과 재능을 끌어 올려주고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해서 무엇에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분야에 온전한 노력과 몰두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마음을 바로잡지 않고 잘한 건 잘했다고 셀프 칭찬을 하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그리고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에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타국이라면 그게 어느 나라가 됐든 상관없이 우울의 덫에 빠지기 더 쉬울 거로 생각한다.
공부도 좋고 다 좋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거라는 걸 여기서 크게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고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아무리 과제와 시험에 지치고 힘들어도 틈틈이 마음을 보살필 수 있는 취미나 다른 활동들을 찾아서 습관을 들여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에 있으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가 내 감정을 보살피는 방법을 배우는 거였는데 이것 만큼은 배워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무엇보다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참 잘 견뎠다 그리고 잘 보냈다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