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들을 만들어 간다는 것
예전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해 한 해가 지나갈수록 내 주변에 남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결국 남은 몇몇 사람들이 곧 진짜 내 사람들이라고. 내 나이 32살. 누구나 그렇듯 이 나이쯤 되면 하루의 루틴이라고는 회사-집-회사-집이기에 만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고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무슨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할지 감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20대 대학 시절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지금 30대인 나의 삶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해 보이지만 반대로 안정감 있다고 느꼈다. 그 삶에 만족감을 느낄 때쯤 이곳 스웨덴에 던져져 20대 초반에 사람들을 알아가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겪으려니 하루하루가 굉장히 피로했다.
내가 사는 이곳 Lappis (라피스)는 학생들이 사는 공동체 마을 같은 느낌인데 그러다 보니 주로 하루의 한 끼는 꼭 친구들과 같이 먹고 식사 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나눈다. 학교도 같이 가고 Fika도 같이 하고 줌 수업도 같이 듣는다.
라피스엔 5분 거리에 해변이 있는데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에 그곳에 가면 항상 사람들이 파티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어도 거리낌 없이 자리에 초대하고 그렇게 친구를 만들어간다. 이런 날들이 지속하다 보면 라피스 거리를 걷는 절반 이상이 한 번쯤 만났던 사람들이고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형식적인 질문을 던져 어색함을 지우려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다. 이곳에서 지낸 지난 한 달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가치관 나의 사고방식을 최대한 숨기며 누구에게나 맞춰질 수 있는 easy to talk인 사람인 척 행동했다. 내가 이렇게 했던 이유는 정보가 필요해서였다. 어디서 필요한 물품들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써머 잡은 언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등등 내가 목표한 것들을 이루기 위한 필요 한 정보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달까.
그러던 중 이 모든 것들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난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난 외로운 걸 싫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더 선호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어느 정도 사람들과의 거리가 필요하고 어느 정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필요 한 사람이란 걸 느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지 내게 필요에 의한 관계이며 오랫동안 지속할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진심인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은 나에게 특별한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친구 또는 이 곳에서 마음 붙일 ‘이유’를 찾고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나도 그들을 내 바운더리 안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마저도 그렇게 내 사람들을 만들어갔다. 이들 속에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안정되고 이들과 함께 있으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안전 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아프면 누구든 먼저 나서서 ‘get well’ 음식을 만들고 약을 챙겨준다. 누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서슴없이 나선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곳에서 친구보다 가족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 웁살라(Uppsala)라는 스톡홀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도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심지어 친구가 웁살라에 살아서 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나는 완전한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스웨덴에 있는 스톡홀름과 다를 것 없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구가 그곳에 있어서 방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음 역은 스톡홀름입니다. 라는 사인을 보자마자 긴장감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고 내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곳은 진짜 내 집이 아닌데 참 이상하지 싶다가 아, 난 지금 스웨덴 이곳에서 내 자신만의 집을 지어가는 중이다고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내 사람들과 내 집을 지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