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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5. 2021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나라 스웨덴

알고 보니 캐시 리시 나라에서 온 나

스웨덴 생활 약 3달 차가 되어 가는 지금, 스웨덴에 막 도착해 무언가를 사야 할 때마다 고달프고 괴로웠던 그때를 기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글을 읽는 분 중 한 번도 스웨덴에 와 본 적이 없지만 이 곳으로 유학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그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8월 1일 인천 공항에서 아버지와 보딩 시간을 기다리던 중 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흰 봉투를 건네주셨다. 멀리 유학 가는 딸이 적어도 한 달은 굶지 않길 바라며 한 달 치 생활비를 스웨덴 크로나(Krona)로 환전해 주신 거였다. 사실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어야 정상인데 “스웨덴은 캐시 리스(Cashless) 국가라 현금 사용이 힘들 텐데..”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2년 전 잠시 스톡홀름을 여행으로 맛 만 본 적이 있어서 아예 모르는 나라는 아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은행 계좌 개설할 때 계좌에 입금해달라고 하지 뭐.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고 난 그 흰 봉투를 약 한 달 반가량 열지 못했다는 사실.


스웨덴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얼마든지 결제가 자유롭다. 다만, 내가 결제하는 카드가 불법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내가 정말 카드 주인이 맞는지 확인을 받아야 하기에 항상 여권을 소지해야 했고 영수증에 사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사인하는 거야 내가 연예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었는데 여권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타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게 복잡해지니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

그래, 여권까지 들고 다닐 수 있다고 치자. 그건 내가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면 되니까 그런데 정말 괴로웠던 건 셀프 페이였다. 이곳 스웨덴에선 슈퍼마켓에 가면 보통 계산원 한 명 많으면 두 명 정도만 자리에 있고 나머지는 셀프 페이를 해야 한다. 몇 가지 안 되는 품목을 구매하여 빠르게 결제하고 싶을 때, 너무나 한가한 시간이라 계산원이 자리에 없을 때, 또는 오늘은 아무랑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 셀프 페이를 사용해야만 하는데 결제 시 스태프가 와서 내 여권을 체크하고 내 주민등록 번호를 전산상에 입력하고 영수증에 사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결제가 끝나기 때문에 “헬프” 버튼을 누르고 스태프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억지 눈웃음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마디 한 후 누구보다 늦게 결제를 끝내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부딪힌다.

매일 같이 이런 귀찮은 일을 겪고 드디어 보장 넘버가 생기고 은행 계좌를 개설했을 때, 드디어 아버지가 주신 현금을 내 계좌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가 우리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은행 직원 말에 다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은행에서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다니? 그럼 이 현금은 어떻게 계좌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스톡홀름 내에서 현금을 받는 은행은 딱 한 군데가 있다고 한다. 그 외에 현금을 계좌에 입금하고 싶은 경우엔 입금 가능한 ATM을 찾아서 넣어야 한다. 또 여기서 문제는 입금 가능한 ATM이 어느 곳에나 있는 게 아니라서 미리 위치를 체크해야 수고를 덜 수 있다.


ATM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를 남긴다.

https://bankomat.se/?filter=deposit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아래 Filtrera (Filter)를 클릭하고 Sätt in SEK 눌러 

입금 가능한 ATM 위치를 확인하면 된다


내가 외지인이기 때문에 또는 유학생이기 때문에 이런 수고로움을 겪으며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스웨덴의 한 면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 아예 현금이 유통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카드 결제가 현금 결제보다 손쉽고 빠른 게 사실이며 거의 모든 상점에서 카드 결제 또는 스위시 (Swish: 스웨덴에서 주로 쓰이는 즉시 결제 수단)를 선호하고 큰 슈퍼마켓 (ICA, Coop, Lidl 등)에서만 주로 현금을 취급하는 게 현실. 주말에 열리는 중고물품 시장이나 신선한 과일 또는 꽃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에선 현금을 받을 때도 있지만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고 학교나 학생들이 주체로 여는 파티 나 행사에선 현금을 아예 받지 않는다.

(출처: Lieselotte van der Meijs/imagebank.sweden.se)

지금은 Personal Number도 받았고 은행 계좌도 개설했고 Swish도 생겨서 삶이 180도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터치 한 번이면 결제가 끝나고 모바일 뱅크 아이디로 스웨덴 온라인 웹사이트 어느 곳이나 쉽게 가입하고 로그인 또는 결제가 가능하며 친구들과 더치페이도 1초면 가능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삶이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 데자뷔처럼.. 하다가 한국에서의 내 삶을 돌이켜보니 지금과 다를 게 없었다. 지갑에 천 원짜리 한 장 없이 다녔고 크고 무거운 지갑 대신 카드 지갑만 가지고 다니거나 삼성페이를 쓰기 시작했을 땐 아예 카드 지갑조차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카카오 페이로 더치페이를 했고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보냈다. 내가 캐시리스 사회의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살다가 또 다른 캐시 리스를 지향하는 나라에 와서 살면서 비로소 현금이 없는 사회가 어떤 건지 체험하는 기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2015년 일본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용/체크/직불 카드 보급 및 사용률 그리고 모바일 페이 보급 비율을 다른 기성 캐시 리스 선진국(예를 들면 미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들과 비교해 보아도 다소간 앞서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나라에서 온 내가 “도대체 왜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불편하게?”라고 불평불만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할게 스웨덴. förlå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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