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 한 달 반이 지났다.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아 졌던 날, 그날 저녁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연락을 확인했었다. 한번 떨어졌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시기적으로 절망적이었던 때였어서, 소식을 듣고 서프라이즈를 넘어선 경악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계속 글을 쓰라는 누군가의 계시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 고향 필리핀으로 돌아갈 기약도 없고, 장기화된 코로나가 영원히 지구에서 인류를 묶는 감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감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또 어떤 사건으로 인해 글이 미치도록 쓰기 싫어졌을 때였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나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와중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은 계속 글을 쓰라는 격려이자, 압박이기도 했다.
다시 연결된 친구들, 당시 만나기 시작했던 친구들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흔이 되고 나서의 작은 성과를 응원해주는 친구들과, 글감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쓴 글을 공유하여 조언을 받기도 하며 그럭저럭 글을 써 나갔다. 적어도 친구들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한 가지 주제로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 수 있고, 브런치 북으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간의 삶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이제 만 9년이 되어가는 결혼생활과, IRRI에서의 삶을, 그동안 나를 허덕이게 하고 힘들게 했던 수많은 문화를 쓰고 싶었다. 다행히도 작년부터 꾸준히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내 글은 날 것을 벗어나, 어느 정도는 정제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문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 브런치 북을 발행했을 때는, 기쁨의 자축도 했다. 나의 삶을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의 격려와 인정과 위로가 이어져서, 믿을 수 없는 황홀감으로 나도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글을 써낸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너무 기특했다. 힘들었던 시간들 때문에 여전히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글을 통해 마치 타인의 삶을 보듯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달콤한 보상이었다.
‘문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의 ‘ 성급한 일반화로 사랑하게 된 나라’ 편에 등장한 내 베프 사라에게도 글을 보내주었다.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글을 영어로 번역했다.
<사라에게 와츠앱으로 보내준 번역한 글>
사라는 매우 흥미로워하며 답을 해주었다.
완벽한 번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베프에게 그녀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 좋다. 그녀를 잊지 않았고 여전히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개인적인 메시지뿐 아니라 글로 보내줄 수 있어 행복하다.
니타와는 화해하게 되었다. ‘한 지붕 두 종교’ 에 나오는 부융의 부인인 니타와 사이가 안 좋았었다. 글을 쓰기 위해 깊이 생각하며, 그녀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글로 표현된 관계는 더 애틋함을 주기도 했다.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그녀에게, 와츠앱을 통해 사과를 했다.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에도 어영부영 그럭저럭 지내긴 했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한 것은 처음이다. 그녀는, 더 겸손한 말로 오히려 나에게 사과를 되돌려 주었다. 그 사과로 인해 모든 응어리는 풀어졌다. 더 사랑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화해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다시 시작을 위해 잠시 멈춰 있는 이 때에, 응어리와 상처들을 털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선물받은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통하여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 같아 기쁨이 넘친다.
첫 브런치 북 발행 이후, 조금 쉬었다. 일단 열 편의 글을 가지고 브런치 북을 발행한 후, 글감과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매일의 습관으로부터 쉴 수 있었다. 쉬고 나니 편안한 상태에서 쓰고 싶은 글감들이 더 많이 떠오르고,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개인적인 곳에 일기를 써오긴 했지만, 브런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고, 공적이라는 부분에서 책임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자유롭게 글을 쓰되, 더 사려 깊고 숙고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된다. 개인적인 글이지만 나를 넘어서야 하겠다는 숙제를 부여하게 된다.
아직 쓰고 싶은 문화가 많아서, ‘문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 매거진은 더 많은 글로 채우게 될 것 같다. 이 매거진을 계속 쓴다는 핑계로라도, 수많은 문화를 배우고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그 글들이 돌아간 내 고향 필리핀, 나의 마을 IRRI에서 쓰여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