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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May 06. 2024

길에서 쪽지를 주었다



길에서 쪽지를 주웠다.

원래 남이 잃어버린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게 싫기 때문이고 혹은 잃어버린 분이 그 자리로 되짚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쪽지였다. 읽은 후였다면 머릿속에 저장했을 테니 찾을 필요가 없을 터였고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전이라면 다시 쓰면 될 것이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게 귀찮은 내가 왜 이 쪽지를 집어 들었을까. 그냥 쓰레기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곱게 접혀 있었다. 정성스럽게 접힌 모양이 내 안의 호기심을 건드렸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했다. 게다가 요즘 누가 쪽지를 쓴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몰래 훔쳐볼 수 있는 기회 같았다.


쪽지를 펼쳤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쪽지보다는 편지에 가까운 장문의 글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용서를 구하는 글이었다. 갈등의 자세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었다. 쪽지를 쓴이가 전달하려는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대면하여 사과할 용기가 없어 쪽지를 줄곧 들고 다닌 모양이다. 손 편지가 주는 정성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 진정성에 내가 대신 용서해 주고 싶었다.

과연 이 쪽지는 상대에게 전해졌을까?

전해지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거라면 쪽지를 쓴 사람이 이걸 꼭 되찾고 싶을 것 같다. 내면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면 더욱 힘들 것 같다.

만약 상대방이 읽은 후 떨어트린 거라면?

부디 마음을 풀고 다시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길에서 주은 쪽지 덕분에

잠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보았다.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 몰입감이 엄청났다. 이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문뜩 흥미로웠다.


-경험담에 허구를 가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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