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염소 공격
학원을 거부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간신히 설득해 수영장 강습 등록에 성공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만 2년 만의 일이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불안한 아이였다. 어려서는 억지로 이곳저곳에 보내 보았다가 자라면서 나아질 거라 믿고 보내는 걸 포기했다. 그래도 수영은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주기적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이번 강습 등록은 친구의 도움이 컸다. 아이의 베프와 협공해 함께 등록에 성공했다. 친구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강습 첫날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발을 다쳐 수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당분간.
아니 한 달 동안 말이다.
아이에게는 오늘 하루만 혼자 가면 된다고 거짓말을 한 후 수영장에 데리고 갔다. 남자 아이라 혼자 탈의실에 들어가 사물함부터 찾아야 했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는 일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사물함 열쇠는 어떻게 잠가야 하는지, 잠근 열쇠는 어디에 두어야 하며, 샴푸와 수건은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탈의실 안과 엄마가 서 있는 탈의실 밖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우여곡절 끝에 수영장에 입성했다. 잘하지 못하는 수영을 어푸어푸 마친 후 재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겉옷을 가슴에 품은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갈수록 입장이 수월해졌다. 간간이 골이 날 때마다 ‘ 나 수영장 안가’라는 치트키를 써보지만 제법 혼자서도 잘 다녔다.
‘아. 드디어 컸구나. 이제 다른 학원도 보낼 수 있겠다.’
감격에 겨워 기뻐하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넘어가긴 아쉽다는 듯,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수영장에 두 번째 다녀온 날 밤, 잠을 자다 말고 새벽에 깨서 나를 깨운다.
”엄마. 등이 가려워. “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수딩젤을 찾아 발라주고 다시 재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더는 가렵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세 번째 다녀온 날 밤, 또 잠이 깼다. 이번에는 사타구니다. 기분이 싸했다.
‘아닐 거야. 설마. 어떻게 보낸 곳인데 수영장 때문은 아닐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 번째 다녀온 날은 아이를 살살 달래 집에 오자마자 다시 한번 샤워를 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샤워를 하고 나온 아이는 그날 밤 더는 깨지 않았다. 다섯 번째 강습을 마치고 온 날, 또 벅벅 긁는다. 겨우 수영장에 적응했는데 몸이 거부하고 있다. 이제는 수딩젤도 듣지 않아 연고를 발라줘야 했다. 수영장 염소 성분이 아이와 맞지 않는 것이다. 난데없는 염소의 공격에 적잖이 당황했다. 새로 산 바디워시도 기존에 쓰던 걸로 바꿔 보고 아이에게 꼼꼼하게 씻는 법도 다시 알려줬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집에서 다시 샤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틴 후 아이는 이제 친구와 수영장에 가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몸이 가려워 벅벅 긁을 때면 수영장이 또 가기 싫어진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그런 아이를 보는 나도 오락가락하긴 마찬가지다. 다른 수영장을 알아봐야 하나. 분명 혼자서는 안 간다고 할 텐데 다시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나. 바꾼 수영장은 과연 괜찮을까? 접영까지 마스터하겠다는 꿈은 일찍이 접었다. 얼른 물에 몸이 둥둥 뜰 수 있기를… 소박한 꿈을 꾸면서 오늘도 아이 손을 잡고 수영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