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독립 대전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의 일이다.
“엄마! 우리도 2층 침대 사면 안 돼?”
잊을만하면 불쑥불쑥 2층 침대 타령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친구네 놀러 갔는데 그 집 자매에겐 2층 침대가 있었다. 아이들은 침대를 벙커 삼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신나게 놀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오니 큰애가 2층 침대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바닥에 요를 깔고 네 식구가 한방에서 자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혼 때 들였던 퀸 사이즈 침대는 큰 애가 태어난 후 남편이 독차지했다.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싱글요를 깔고 좁은 공간에서 큰애의 발차기를 견디며 자는 법을 터득했다. 남편이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물살이 센 계곡물 바위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와 같았다. 둘째가 태어나자 셋이 눕기엔 침대 옆 자투리 공간이 너무 좁았다. 결국 침대를 처분하고 요를 샀다. 남편이 누렸던 호사도 끝이 났다. 넷이 바닥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만약 침대를 산다면 큰 애 방에 놓아야 할 것이다. 공간이 부족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에 더군다나 2층 침대를 놓으면 꽤나 답답할 텐데… 게다가 둘째는 아직 어려 침대에서 잘 수 없었다. 결국 침대는 남편 차지가 될 텐데 안 될 일이었다. 큰 애에게 어린 동생이 사용하지 못할 2층 침대를 사는 건 돈낭비 같다고 설명해 주자 아이는 한 발 물러나는 듯했다.
“그럼 그냥 침대 사줘. 친구들도 다 자기 침대가 있잖아.”
그렇다. 반박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엄마아빠도 갖고 있는 침대. 사실 나도 내 침대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사달라고 조를 대상이 나 자신이라 떼를 쓸 수 없었다. 집이 좁아서 안된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의 같은 평수에 사는 다른 친구들은 우리 집과 같은 구조에서도 용케 침대에게 내 줄 자리가 있었으니.
사실 큰 애가 한창 침대 타령을 할 때 내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2년 뒤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때 집을 넓히면서 새 침대를 놓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이 입장과는 상관없는 어른의 계획일 뿐이다. 나도 한 발 물러섰다. 침대를 사기 전 조건을 걸었다.
“일주일 동안 혼자 자는 연습을 먼저 해보고 성공하면 사러 가자. 침대 샀는데 무섭다고 자꾸 안방으로 와서 자면 산 게 아깝잖아.”
아주 합당한 이유였다. 아이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 방에 1인용 요를 깔만한 공간을 만들어 주느라 물건을 조금 정리했다. 바닥을 꽉 채워 요를 깔아주고 방을 나왔다. 아이는 침대를 갖고 싶은 마음에 어두운 방에 혼자 들어가더니 잠을 청했다. 무서워서 방문을 열고 거실의 빛을 엄마 삼아 잠이 들었다. 평소 잠이 들 때까지 엄마가 옆에 누워야 안심하고 잤는데 침대의 힘이란 그 크기만큼 대단하다. 큰 애 없는 빈자리를 보며 허전함을 느낀 건 오히려 나였다. 이게 아닌데, 내심 새벽에 안방으로 달려와 ’ 엄마랑 잘래 ‘라고 하길 기대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독하다. 침대 소유욕이 밤의 두려움을 이겨내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새벽에 눈이 떠졌지만 안방까지 걸어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불을 얼굴까지 푹 덮어쓰고 견뎠다고. 무서워해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도했다. 그러나 둘째 날도 아이는 혼자 깜깜한 방에 눕는 걸 선택했다. 이런 식이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모든 방의 불을 끄고 안방으로 가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한 줄기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 옹졸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큰 애는 두 번째 테스트 역시 통과했다. 낭패다.
셋째 날이 되었다. 오늘까지 통과하면 탄력이 붙어서 일주일동안 혼자 자기에 성공할 것 같았다. 초조했다. 아이가 쉽게 포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의지가 강했다. 어쩔 수 없이 감성팔이에 돌입했다. 어른이 되어서 아이를 상대로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내가 꼭 이겨야 할 대결이었다.
“오늘도 혼자 잘 수 있겠어? 엄마는 00가 없어서 너무 외로운데. ”라고 슬쩍 말하니 아이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화답했다. “ 나도! 너무 무서워서 그냥 엄마랑 자야겠어. 침대는 내년에 살게” 내년에 사줄 계획도 전혀 없었지만 현재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 그래! 침대는 1년 뒤에 사자!”
결국 침대는 내 뜻대로 이사 후 사게 되었다. 이사한 집의 자기 방에 침대까지 생기자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잤다. 그렇게 첫째가 뒤늦게 잠자리 독립을 했는데 이번엔 둘째가 문제였다. 이사하느라 지출이 많아서 미처 둘째의 침대를 사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큰애 없는 안방에 셋만 남아 요를 깔고 잤다.
바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남편이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것 때문에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편한 잠자리를 위해 안방에 침대를 놓기로 결정했다. 그전에 둘째를 먼저 독립시켜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덜컥 둘째의 침대를 결제했다. 아이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렇게 둘째에겐 처음이자, 내게는 두 번째인 ‘잠자리 독립 대전’이 첫째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