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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May 09. 2024

사랑하는 너에게

빵호

나를 끝없는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대상이 많다. 남몰래 좋아했던 친구, 어른스러워서 그 동경을 숨기지 못하고 곁눈질만 했던 동급생, 무엇이든 함께 나눠먹었던 친구. 존경했던 선배,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 진심을 감추려고 괜히 퉁명스럽게 했던 사람. 마음을 다했으나 나를 힘들게 했던 지인... 모두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인연이다. 모종의 이유로 관계가 끊어졌거나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나는 정이 넘치도록 많아서 떠나간 인연들에 사무치게 가슴 아파했다. 관계를 끝낸 사람이 나였든, 그였든 항상 내 안에서 원인을 찾아 들쑤시고, 긁고, 파헤쳤다.

그 때 다른 행동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이 정신적 자해는 내가 현재 만나는 사람들에까지 지속됐다. 사소한 오해가 생길 때마다, 또는 내가 무언가를 주어도 내가 생각한 만큼의 애정을 받지 못할 때마다 내 마음은 스스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것 봐, 다들 내가 느끼는 것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러다가도 이런 나 자신에게 진저리를 쳤다. 나는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은 것인가?

나는 나에게조차 완전한 이해를 받지 못한다.

그 생각이 상처를 후벼파서 기어이 피를 보고 진물이 나오게 하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마음에 모든 걸 담으려고 하니? 우리 마음은 너무나도 작아. 흘러간 것은 놓고, 가질 수 없는 건 포기할 줄 알아야 어른이 되는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그렇게 되지도 않는걸.

살아오는 내내 시간이 빨라졌다가도 느려졌다. 어느 순간 나는 잠자다가 한밤중에 울면서 깼다. 한 때는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찾아왔다. 나는 엄마에게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끝도 모를 결핍을 계속 느끼며 그 근원을 찾아다녔다.


눈을 감았다 뜨면 무수한 내가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이유 모를 눈물을 쏟는 어린 내가 있었고, 보답받지 못하는 애정에 대학교 뒷길에서 엉엉 우는 나도 나타났다가, 친구의 의리가 동정심이란 것을 알게 된 열다섯의 내가 있었으며 대화가 안 된다고 공기놀이를 거절당한 열두 살 즈음의 내가 나를 돌아보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이 슬픔을 주체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슬프면 참다가 기어이 토해내기만 했을 뿐이다.

이 우울과 절망의 순환을 겪어내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겨우 인지했다. 종국에 남은 것은 생채기가 가득한 무덤 같은 마음뿐이란 것을.

나는 왜 이토록 아픈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들을 너무 사랑했다. 필연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들에게 있었다.

끊임없이 관심을 표현했던 친구의 하얀 얼굴, 온 마음을 다 보여주었던 남자의 진실한 눈, 무서운 밤길을 듬직하게 이끌어 줬던 선배의 가녀린 팔, 어디든 함께 잡고 다녔던 친구의 까만 손, 체육복을 환복할 때 내 몸을 빈틈없이 가려주었던 너의 셔츠, 내가 무엇이 되든 나를 지지할거라는 따뜻한 포옹, 나를 살게도 하고 일으켜주기도 했던 너의 다정한 말.


너무도 사랑한 이들에게 주는 만큼 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이따금씩 내 눈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다가도 가쁜 숨을 내쉬며 깨어나곤 했다. 그러면 밑도 끝도 없는 슬픔에 잠식되어서는 눈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네 얼굴을 보면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듯한 이상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너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나에게 이토록 커다란 존재였다. 밑빠진 독같은 내게 계속해서 사랑을 부어넣었다. 우리의 끝이 잔인해서, 주고받은 말들이 비수가 되고 상처가 되어서 그동안 나누었던 신뢰와 다정의 순간을, 그 충만한 행복을 잊고 있었다.


너와 나의 사랑은 처음부터 달랐다. 나는 내 기준에 맞추어 이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다 여기며 스스로 아파하고 더더욱 너를 갈구했다.


아. 이제서야 알았다. 너는 곧 나였다. 나는 너에게 내 아픔을 투영했다. 너에게서 내 과거를 보고 미래를 넘겨 짐작했다. 나와 같은 너라서, 끔찍하게 혐오하는 내 바닥을 보게 될까봐 이별한 것이다. 이 모순은 결국 나에게서 기원한 것이다.


이 마음의 끝에 다다르면서, 마침내 나는 이 슬픔을 슬픔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내가 뒤늦게 깨달은 너의 사랑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이다. 그리고 서글프고 가엾은 나 자신을 안아주기 위한 성장통이다. 결국 너와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과정이 될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견뎌질 만 하다.


너를 용서하고 나를 용서할게. 그 시절에 갇혀있는 우리를 구원해내자. 빠져나올 용기를 주자.

끊어지지 않는 희망으로, 거대한 사랑으로.


이 글을 쓰는 밤에 결단을 내린다. 다시 돌아가도 너를 만나겠다. 너를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웃고 신나하며 그 세월을 다시 겪어보고 싶다. 결말을 알고 시작하더라도 다시 돌아갈거야. 이게 내 최후의 진심이야. 마지막에 남겨진 내 진짜배기 사랑이야. 그러나 너에게 닿지 않을, 결단코 전하지 못할 내 마음이야.


그러니 꿈에서라도 나를 만나줘.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우리 악수 한번 하자. 화알짝 웃으면서, 이 기나긴 밤을 깨우는, 새롭게 타오르는 태양을 함께 눈에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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