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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Jun 26. 2024

다녀올게

넴릿

너는 도대체 언제 쉬는거니, 오늘도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마지못해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등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이리저리 꿈틀댔다. 그제야 안성맞춤인 듯 편안한 자세를 잡고 두 눈을 애써 감았다. 눈을 감으면 까만 화면이 팟-하고 나타난다. 온통 까만 화면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는데, 화면 가장자리에 한 문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럼 그렇지. ‘떠나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정지 버튼이 없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가까이서 보면 울부짖는 마음의 소리,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다운 행렬이다. 하얀색 글자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그 화면을 가득 메웠다. 까만 화면이 점점 하얘지고 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 건지 하얘진 화면이 한동안 멈춰있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와 천장이 제법 밝았다. 양팔을 위로 들어 만세를 하고 대(大) 자로 누운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이번에는 하얀 천장이 점점 까매지고 있다. 더 이상 까매지다 못해 서서히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 무렵, 지금 몇 시인 줄 아냐며 얼른 준비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모든 게 무색하게 멈췄다. 침대 위에서 마치 또 다른 하루를 보내다 온 것처럼 완전히 진이 빠져 버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자꾸만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점점 쌓여가는 이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정작 한 번도 떠난 적은 없다. 떠나고 싶으면 짐을 싸야 하는데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다.

4년간 다닌 직장, 즉 안전하고 확실한 것으로부터 익숙함을 벗어던질 용기가 없었음을, 감히 그만두면 당장 수입이 멈출 텐데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컸음을, 내 또래의 사람들보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게 뒤처질 게 뻔해서 망설였음을, 다른 직장에 가서도 똑같은 이유로 포기할까 봐 다시 취업 준비할 의욕이 나지 않아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음을, 진정한 나를 찾아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자마자 여자가 혼자 여행하는 것도 위험한데 더구나 귀가 안 들리니까 더 위험하다고 안전상의 이유로 반대하는 부모님과의 날선 대립에 괴로웠음을, 갓 사귄 남자친구를 두고 오랫동안 배낭여행을 떠날 생각을 한다고 훈수를 두는 몇몇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음을, 눈에 띄게 기력이 쇠약해져 가는 열여섯 살 강아지의 모습이 눈에 밟혀 차마 떠날 수 없었음을,

이것저것 묶였고, 묶어버린 마음의 짐들 때문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금방 접어버린다. 그때마다 난 떠나고 싶었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짐들을 주워 36리터 배낭에 하나하나씩 꾹꾹 눌러 담았다. 잔뜩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힘껏 한 발짝 발을 내디뎌 출근길에 나섰다.

"엄마, 나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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