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릿
“일어나, 제발 일어나 좀!!!!!”
나이 서른 먹어도 여전히 혼자서 절대 못 일어나는 이가 있다. 그런 이를 평일 아침마다 흔들어 깨우고, 아무리 깨워도 전혀 반응이 없다 싶으면 기어코 작은 등짝에 스매싱을 날려야만 했던 엄마의 하루가 오늘도 힘겹게 시작된다. 아침마다 핸드폰 알람이 울려도 언제나 침대 위에서 평온하게 자고 있을 뿐이다. 정작 옆방에 계시던 엄마는 눈치 없이 지잉 계속만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에 깨어 내가 있는 방으로 와서 내 어깨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 거친 자극은 나에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왜 혼자서 일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스스로 잘 못 일어났던 게 언제부터였을지 한참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다.
20년 전에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일어나 보고 싶다는 씩씩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부모님이 기특하게 여겼는지 알람을 맞추면 그 시간에 진동이 울리는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는지 마치 코끼리 등 위에 개미 떼들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진동이 너무 미세하게 울린 거였다. 씩씩한 마음으로 잘 일어나 보자고 내린 결심은 무색해졌지만 하루는 교실에서 교과서를 펼쳐둔 채 손목시계에 있는 각종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말 그대로 기능성 물건 자체에 꽂히던 날이었다. 그러던 참에 수업 시간에 어딜 감히 삑삑 소리를 계속 내냐면서 역정이 내시던 선생님께 단숨에 뺏겨버리고 말았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부모님이 사주신 손목시계를 압수당했다는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는 걸 미처 알 리가 없었던 어린아이가 수업 시간에 멋모르고 호기심으로 버튼을 마구마구 눌러댔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 반 친구들 눈에 얼마나 우스운 존재로 보였을지 수치를 느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삑삑거리는 손목시계는 애물단지가 되어 오랫동안 꺼져있었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교복을 벗어던지고 일찍 취업 준비를 시작하려고 직업학교로 들어갔다. 본가와 거리가 멀어 통학이 힘든 훈련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었다. 장애를 가진 훈련생들 중심으로 하는 곳이었기에 보조공학기기를 얼마든지 제공해 주었고, 시설 또한 모든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다 갖춰있었다. 기숙사로 들어가 생활하게 되면서 내 손 한 뼘보다 컸던 진동시계를 받았다. 베게 밑에 원형 모양의 진동기를 끼워둔 채 숙면을 취하고 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지진이 났나 싶을 정도로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눈이 저절로 떠질 수 있었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직업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침대가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만들어주는 진동시계를 여전히 놓지 못했다. 잦은 야근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는 횟수가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가면서 이게 정녕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침대가 흔들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아침은 어느새 사라졌고, 날이 밝아도 조용한 동굴 속에 깊이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 진동시계가 고장 난 게 아닐까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정작 고장이 난 건 나 자신이었다. 회사에서 좋은 직원으로서, 열심히 하는 직원으로서, 프로답게 성실하게 일을 하던 내가 퇴근하고 집에 왔다 하면 제때 바로 좀 씻으라는 부모님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소파 위로 다이빙해서 벌렁 누워버린다. 엄마가 따뜻하게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그 자리에서 또 벌렁 누운다. 집안일을 거들 힘도 없이 엄마 앞에서 마냥 어린애같이 퇴행하는 것 같이 시간은 거꾸로 가게만 된다. 그럼에도 엄마가 말로는 힘들다고 하면서 항상 내 응석을 받아주고 나를 아껴줬다. 그러던 중, 곧 신혼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는 곧 사위가 될 배우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김서방, 힘들겠지만 아침마다 늦지 않게 내 딸을 잘 깨워줘!"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깨워야 한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아무리 날 사랑한다지만 언제나 받아주기만 했던 엄마의 사랑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와 함께 살게 될 배우자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SNS에서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봤던 기능성 침대를 직접 체험하러 쇼룸으로 갔다. 침대를 고르면서 설명을 듣는 과정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라운지 모드, 수면 무호흡증에 도움을 주는 코골이 방지 모드, 허리에 부담을 줄이고 숙면에 도움을 주는 무중력 모드, 간단한 식사나 수유도 편안하게 도와주는 TV/PC 모드 등 다양한 각도로 조절 가능해서 집순이인 내게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하여 연동시키면 원하는 시간에 알람을 울려 상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기능에 매료되었다. 어쩌면 이 침대가 내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신혼집에서 그 침대를 설치했고 그날 밤, 침대 위에 누워있는 동안 이제는 혼자서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알람이 울리자 마치 누군가가 내 상체를 부드럽게 천천히 일으켜준 것 같이 침대 위에서 비스듬히 앉아있는 채로 눈을 스르르 떴다. 그 순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기능성 침대가 물리적인 힘으로 나를 일으켜 도와준 거지만 그보다도 내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해진 것만 같았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아침이 밝아오면 배우자가 아침마다 나를 깨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이제는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서 문자로 안부 인사를 보내면서 창문 틈 사이로 살며시 퍼지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는다.